사람들이 모였다.

설은 나가 쇠도 보름은 집에서 쇠라지.

먼 길 떠났다 설에 돌아오지 못할 일이 생겼더라도

보름 정도면 그 사정을 해결하고 돌아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거름을 져내기 시작하는 이맘 때,

농사를 챙기기 위해서라도 집에 와야 하는 시기.


마을 아래 작은 절에서 스님이 초대를 했다.

다들 건너가 밥을 먹다. ‘모여서’가 중요했던 거다.

더위들도 팔고 부럼도 깨고. 한해 건강들 하시라, 걸음들이 보다 수월하시라.

어찌나 풍성한 밥상이었던지.

그렇게 채우기 시작한 배가 자정까지 이어졌던 하루라.


점주샘이 밤을 쳤다.

약밥을 만들련다.

대추를 돌려 씨를 빼고 그 씨에 흑설탕과 소금을 넣고 끓여낸 물을

불린 찹살 밤 대추와 몇 가지 견과를 같이 넣어 자박하게 물 부어 지었다.

거기 계피와 참기름을 버무려 사각통에 넣었네.

간까지 꼭 맞았더라.

그런데, 번번이 물이 적은 것만 같아 조금만 더 하다가 질어지고 마는.


오곡밥도 짓는다.

나눠두었던 불린 찹살 위로 역시 불린 도끼콩이며 수수와 팥과 조며...

갖가지 고사리 도라지 숙주 취 시금치 시래기나물들에다 연근조림까지

봄나물이 곧 찾아들거라 겨울에 남긴 것들 다 오르는 밥상이라.


달을 밀어올리느라고 불도 힘을 내고 사람들도 힘을 냈다.

구름이 어찌나 요동치는지, 바로 그 주위를 묻었다고 풀고 묻었다고 풀고.

산을 넘어오는 일이 그리 힘이 들더라.

어느 순간 둥실!

바람을 빌고 서로를 응원하고 안고,

비로소 새해를 시작하는 것 같은 순간.

자그맣게 달집이라고 태웠는데

한지에 썼던 소원문도 타고,

땅 따당, 달집 안에서 터지는 대나무 소리,

그리 액을 날렸으니.

짚 넣고 불씨 넣어 깡통도 돌렸네. 우리 삶을 그리 힘내며 나아가리.

그러다 줄이 끊어지며 멀리 날아가 남아있던 눈 자국 위에서 부스스 사그라들었다.

우리 모든 날들 그리 무사히 보내고저.

바람이 꽤나 거칠었지만 너른 마당이 고마웠으이.


장작하나가 더는 잘 안 타겠다 하고 아예 저 편으로 치울까 하고 보내는데

구르면서 거기서 나온 빛싸라기가 땅바닥에 무수한 별을 쏟아내기

너도나도 굴러서 원을 만들며 놀았다.

별 위를 걷는 천상인들이었으니.


들어와 점주샘이 사온 회와 딸기를 먹고

3차로 금룡샘이 사온 고기를 굽고

4차로 두부탕을 해서 다시 몸을 데우고

라면으로 해장까지.

마지막으로 차를 달였다.

말차를 마시고 흑차를 냈네.

마음 느꺼웠더라.


새해, 강건들 하시라, 봄이 마음에도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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