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12.해날. 맑음

조회 수 753 추천 수 0 2017.02.21 22:24:52


앗, 방이 차다, 무슨 일인가, 또!

된장집 뒤란 보일러실,

보일러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연탄불에 삭고 영하의 오랜 날씨에 안팎 온도차로도 낡아졌을 관이라.

방바닥을 뜯어내고 할 공사 아닌 것만 천만다행.

부랴부랴 여기저기 연락을 하는데,

해날이라 쉽지가 않다.

가까운 곳의 건재상까지도 아예 연락이 닿지 않는.

다행히 기사님 한 분 맡아주셨네.

얼마다 다행하냐, 며칠 혹독하게 추웠던 날이 낮부터 풀린다더니

너무 힘들지 않게 교체작업 할 수 있었네.

앞으로 직접 해볼까 눈여겨보다가, 이것까지는 안 되겠다 손을 놓았다는...


고치고 있는 사이 쌓인 연탄을 깨다.

제 때 제 때 깨자 하지만 쉽지 않은 일들이라, 나오는 양이 어마어마하기도 하고.

이런 순간 마을 할머니 한 분 생각.

당신 댁에 가면 산더미처럼 나뭇단이 쌓였더라.

아드님들 와서 한 일인가 했더니 날마다 한두 개씩 끌어다 당신이 쌓으신 거라.

날마다 하는 일은 그리 무섭다!

마찬가지로 날마다 하지 않고 쌓아두는 일도 또한 그리 호랑이다.

식구들에게 제발 제 때 제 때, 이러도록 하지 말라, 얼어버리면 깨는 일 더 힘들고,

하지만 날 추울 때 어렵고, 그러다 그만 여러 날 지나고, 그러다 그게 관성이 되고,

어쩌다 보는 이야 왜 저러나 쉽지만, 일을 맡아하는 이는 그 사정이 또한 있기 마련.

좀 있다 해야지 하다, 여기 일이 어디 그런가, 곧 다른 일에 밀려버리고

그러다 날 훌쩍 여러 날이 흘렀을 테고...

거대한 연탄재 산을 그래도 오늘은 3분의 1은 치웠더라.


하는 결에 더 하자,

고추장집 보일러실 안에도 연탄재 가득 쌓여있었다.

손 있을 때 그거라도 치워내자고 점주샘이며 사람들 몇 붙어

장순이네 뒤쪽으로 끌어내려 부수었네.

앞을 버지르르하게 하기 쉽지,

하기야 급히 손님 들이닥치면 그거라도 해야지,

하지만 청소의 핵심은 뒤란, 후미진 곳이라, 그곳을 치워내야지,

그래서 어디 가면 앞이 그럴 듯한 거에 그리 감탄하지 않는다.

그 뒤를 돌아가면 다른 풍경이기 일쑤.

제발 어디 쑤셔놓고 뒤를 밀어놓고 하지 말자, 이곳에서 청소할 때마다 강조하는 거라.

일은 또 매듭이 중요할세, 어떤 일이 그렇지 않을까만,

깬다고 다 깨진 게 아니라

그 덩어리가 더 잘게 부셔져서 흙으로도 잘 쓰일 수 있게 더 자잘하게 발도 밟아 뭉갠다.

해지고 있었다.


저녁을 챙겨먹고 따순 방에 펴진 이불 아래로 발 집어넣자 노곤해지는 몸,

일찍 잠자리로 들려나.

“이렇게 따뜻한 구들이었는 걸...”

영 따뜻하지가 않다 했더니, 조금씩 새고 있던 보일러 온수였겠다.

실하게 따숩다.

책을 하나씩 끼고 도란거리는, 벗이 와서 더 좋은 산골 밤일세.

“부디 읽어주시라.”

저쪽에선 요즘 두루 권하고 읽는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곁에서는 문장 좋은 소설가가 쓴 청소년소설을 들추는 중.

추위 한풀 꺾이기 시작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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