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질 때는 외로움도 역시 찾아들었다. 이제 회의에 빠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으나 그럴 때면 흡사 내 전 생애가 내 뒤에 펼쳐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다. 나는 우리가 일단 그 산에 오르기만 하면 눈앞에 가로놓인 과제에 깊이 몰입하는 바람에 그런 기분은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따금, 결국 내가 찾던 게 뒤에 남겨놓고 온 어떤 것이라는 걸 깨닫기 위해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깃들곤 했다.

(토마스 F. 혼베인, <에레레스트: 서쪽 능선> 가운데서)


2014년 11월 한 달, 네팔을 떠나며도 인용했던 글이군요.


2월 22일부터 3월 12일까지 물꼬를 비웁니다.

이번에는 네팔이군요.

안나푸르나 산자락의 한 학교에 들립니다.

가는 걸음에 트레킹도 할 참입니다.

이틀 전에야 지도를 펴놓고

마르디 히말 베이스 캠프 웨스트(Mardi Himal Base Camp-West, 4500m)로 가리라 했습니다.

정상에 이르는 게 아니니 마을 뒷산 가듯 가볍단 말이지요, 가이드와 포터 없이 나설 양이지만.

행여 염려라도 하실세라...


안식년이라고 둔 2017학년도이지만 물꼬 삶은 계속되지요.

여느 해와 좀 다르기야 할 것이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학교로 어른들의 학교로 옴작거릴 것입니다.

돌아오자마자 3월 12일 학기를 여는 ‘첫걸음 예(禮)’ 시작으로

그 주에 당장 관내 제도학교 지원수업이 시작되고 대해리 한글학교가 꾸려지며,

달골 굴삭기 작업도 기다리고 있고,

4월에 사흘의 ‘물꼬 stay-자기돌봄’(제목도 채 잡히지 않았지만) 일정도 돌아가고...


영영 돌아오고 싶지 않은 풍경이 발을 묶기도 하고

밥벌이 할 일이 거기 생기기도 하지만

달콤함이 늪지대처럼 펼쳐지더라도

결국 이 나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역시 물꼬가 여기 있기 때문!


다녀오겠습니다.

뜨겁게 뵙기로.

사랑합니다.


2017년 2월 22일 물날,

그대를 잊은 적 없는 물꼬에서 옥영경 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2056 2017. 2.11 흙날. 눈싸라기 몇 날린 낮, 그리고 보름달 / 정월대보름제 옥영경 2017-02-21 872
2055 2017. 2.12.해날. 맑음 옥영경 2017-02-21 753
2054 2017. 2.13~15.달~물날. 흐림, 맑음, 가끔 흐림 / 청량산과 병산서원 옥영경 2017-02-22 961
2053 2017. 2.16~18.나무~흙날. 밤비 내린 뒤 거친 바람 / 영월 내리 안골 옥영경 2017-02-23 832
2052 2017. 2.19.해날. 저녁답 비 옥영경 2017-02-23 1000
2051 2017. 2.20.달날. 저녁답 비 / 홍상수와 이언 맥퀴언 옥영경 2017-02-23 2168
2050 2017. 2.21.불날. 맑음 옥영경 2017-02-23 936
» 2월 22일부터 3월 12일까지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17-02-23 1141
2048 무사귀환, 그리고 옥영경 2017-04-06 1727
2047 2017. 3.13.달날. 맑음 / "첫걸음 禮" 옥영경 2017-04-19 791
2046 2017. 3.14.불날. 맑음 / 숲속 학교의 성자 옥영경 2017-04-19 810
2045 2017. 3.15.물날. 맑음 / 줄선 날들 줄 맞추기 옥영경 2017-04-19 777
2044 2017. 3.16~17.나무~쇠날. 맑음 / 기억 옥영경 2017-04-19 854
2043 2017. 3.18~19.흙~해날. 맑음 옥영경 2017-04-19 785
2042 2017. 3.20~22.달~물날. 흐리다 비, 그리고 개고 맑았다 옥영경 2017-04-19 824
2041 2017. 3.23.나무날. 맑음 / ‘예술명상’ - 제도학교 지원수업 옥영경 2017-04-19 832
2040 2017. 3.24~26.쇠~해날. 맑고 흐리고 맑고 / 불교박람회 옥영경 2017-04-19 878
2039 2017. 3.27.달날. 함박눈, 서설(瑞雪) / 영화 <The Company You Keep> 옥영경 2017-04-19 893
2038 2017. 3.28.불날. 맑음 / 잘하고 있네 옥영경 2017-04-26 797
2037 2017. 3.29.물날. 해 잠깐씩 / 그렇다니까! 옥영경 2017-04-26 78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