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학교에 올라와서 벤치에 앉아
따뜻한 차 한잔으로 아침을 맞던 중이었습니다.
선배 몇몇과 차를 마시는데,
문득 이런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너, <바보들의 행진> 봤니?"
"아뇨... 제목만 들어봤지,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얼마전 누군가 씨네21에 그런 얘기를 써놓았던데..."
그 글을 쓴 사람은
<바보들의 행진>을 지금까지 세번을 봤다고 합니다.
10대에 한번, 20대에 한번, 그리고 지금 30대에 한번.
두 번째 볼 때까지만 해도,
영화제목을 왜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했을까...
궁금했답니다.
그런데,
30대에 들어서서 영화를 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랍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중의 한 명이
다른 한명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사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넌 앞으로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 어떻게 할거니...?"
그 대사를 듣자마자,
글쓴이는 코웃음이 나왔답니다.
"저것들 정말 바보 아냐?"
('음... 그래서 <바보들의 행진>이었군...')
'우리들의 시대'라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앞으로 올 그 무언가로 알고 있는 '녀석'들이
우스꽝스럽고, 한심하고, 안타깝더라는군요.
스스로를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인, 타자 정도로만 인식하고,
앞으로 오리라는 그 언젠가까지
자신의 몫과 책임을 유보해두는 모습이
영락없는 바보짓꺼리라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계신
우리의 빅 부라더스들은...
어쩌면 우리도,
영화 속 인물들처럼 바보같이 행동해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바로 이 순간을 '미래'로 미루어두고,
정작 미래가 현실이 되었을 때는
밥벌이하고 사느라, 이제는 늦어버렸어..라고
후회하는 바보들처럼 생각해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고 덧붙이면서 말이죠.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제 얼굴도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단순히 '뜨거운 차'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질 않더군요...
벤치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으면서
'바보'가 되길 거부하는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중에 물꼬 두레샘, 푸마시샘들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잠깐 들렀습니다.
희정샘, 몸이 많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두 분 생각해보니 너무 잘 어울립니다.
두 분의 뜻도 방향이 같으니
그보다 더 깊은 어울림도 없으리란 생각을 하면서...
희정샘에 대한 마음은...
제가 깨끗이 포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