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95 ...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가령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데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잘하고 있네 1.

읍내 병원에 건강진단서를 가지러 가는 길에 한 형님 댁에 들렀다.

먹을거리로 물꼬를 오래 지지하고 지원하시는 분.

그 사이 세를 넓혀 큰 가게로 이사를 하셨다.

이제 혼자 손으로 못하니 자식들이 거들고 있었다. 다행하고 고맙다.

밥과 갓 담은 김치부터 내놓으신다.

친정이 따로 있지 않다.

뜨거운 밥의 힘!(뜨거운 밥, 뜨거운 힘)

잘하고 있네, 그 지지의 힘!


잘하고 있네 2.

들어오면서 면소재지 장순샘네 밭에도 간다.

가까이 있는 품앗이샘으로, 가깝다는 죄로 툭하면 불려와 물꼬 일을 거드는 샘이다.

읍내에서 얻어오는 김나는 순두부를 댁네 부엌에다 부려주고 온다.

장순샘은 해가 지도록 밭에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걸음, 애쓴다. 잘하고 있다!

올해는 그네 밭에 아직 들어가 보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품앗이 그거, 일방적으로 장순샘만 하고 있는 올 봄이다.

물꼬 들일 급한 대로 좀 하고 자두밭에도 가야지...


잘하고 있네 3.

불교박람회에 다녀온 가방을 이제야 풀었다.

향도 꺼내고 여러 자료들도 훑어보고 가방 먼지를 털어 정리해두고.

내게 산을 내려온 가방을 바로 정리하는 법을 가르쳐준 벗이 있었다.

그런데, 타박하기 익숙한 그에게, 그런 줄 알아도 번번이 마음이 상하고는 하더라.

이제는 너무 먼 곳에 가 있어 이 생에서 만날 수 있을까 싶지만

그에게 늘 고팠던 말은, “잘하고 있다.”

다시 만날 때 그의 첫 마디도 그랬으면 좋겠다, “잘하고 있다.”

헌데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네 4.

나이 스물부터 지금까지 반복된 고질병 하나 있다,

밤마다 결심하고 아침이면 좌절하는.

내일 죽어도 좋을 듯이 온 열정으로 살지만 그게 다 무어냐 뚝 떨어지기도 잦은.

그렇게 찾아드는 순간순간의 무기력에서

가족의 지지와 격려는 참으로 커다란 응원이었다. “잘하다 있다!”

“뭐해?”

“그냥...”

“잘하고 있네. 옥영경은 존재가 옳으니까, 기쁨이니까.”

우리식구들의 오글거리는 대화.


잘하고 있네 5.

오래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세월호 이후 급속도로.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에 산 경험을 아는 이들이 가끔 물었다,

어디가 살기 제일 좋으냐, 어디가 제일 힘들더냐.

한국에서 사는 일이 가장 고단한 듯하다.

당연히 고집멸도라, 현재 삶의 바로 이 순간의 현장이니까 또한 그럴 테고.

세월호가 바닷 속에서 울렁일 때 그래서 덩달아 휘청이고 있을 때

그 시간을 같이 견뎌준 벗이 부재하게 되자

수문 밖에서 넘칠 듯이 기다리던 물이 수문 열린 듯 밀려 내려오는데...

글쓰기 하나도 퇴짜를 맞았다. 글 잘 쓰는 이들이 얼마나 흔하고 많은가.

글에 힘이 없어졌다. 그거 삶에서 오는 것일 터.

글의 논리도 약해졌다. 철학 없음을 책읽기로 메울 수도 있었을 것이나

나는 늘 게으르거나 바쁘거나.

그런데!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가장 젊은 날,

아직 젊고, 아직 잘할 시간 있다.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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