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굴삭기가 왔다.

계획에 없이 뚝딱 얻은 이틀이다.

잔디 주문을 받기 위해 현장을 왔던 준한샘은

그만 물꼬 논두렁이 돼버렸다.

그래서 ‘아침뜨樂’ 일이 자신의 일이 돼버린.

미궁에 잔디를 심자니 그 위 아가미못을 마저 정리하고 일을 해야 되겠기에

당신 하는 일에서 굴삭기를 이틀 빼오게 된 것.


준한샘이 지휘하고 봉렬샘이 굴삭기를 움직였다.

마침 달골 위 묵힌 밭에 돌이 많아 그걸 빼내 아가미못에 쌓았다.

시원시원하게 되고 있더라.

그런데 봉렬샘과 준한샘의 갈등이 좀 있었네.(쉰은 갓 넘긴 두 분은 고교 동창이라고.)

준한샘은 굴삭기가 할 이틀치 일을 주어

전체적으로 달골에 굴삭기가 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싶고,

봉렬샘은 또 자신이 하는 돌 쌓는 일에서 표 나게 잘하고 싶다.

“이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여기는 그렇게 모양내는 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서툰 것이 더 어울릴 수 있다.”

못은 흙이 쓸려 내려오지 않을 정도만 쌓고

번 시간으로 달골 다른 곳들을 좀 만지고 싶었던 준한샘이었으나

일하는 사람은 제 일이 표 나도록 하고 싶다.

물꼬 주머니가 준한샘 주머니인 줄 몰랐네, 그랴.

어쨌든 미끈하게 전문가스런 연못이 되었다.

“괜찮습니다. 연못만 완성 돼도 충분해요.”

좋지, 아무렴.

적어도 아가미못은 이제 잊어버려도 되니까, 신경 안 써도 되니까.


잔디를 심을 미궁을 고르고,

아가미못에서 미궁으로 잇는 둑 아래 수로를 파고

굴삭기는 아고라로 옮아갔다.

바닥을 고르고, 기울어 내린 돌계단 발루기.

집도 새로 짓는 게 낫지 보수하는 게 힘은 힘대로 들고 때깔 안 나듯

돌계단 바로 세우는 일은 그러했다.

봉렬샘이 퍽 아쉬워라 한.


준한샘이 잔디를 실어올 수 있다는데...

“팔기는 그렇고 우리가 가서 하는 작업에는 쓰는 잔디인데...”

미궁 깔 만큼 지원해주신단다.

아가미못 위 심고 싶어 하는 대나무 대신 심으라고

편백도 좀 실어 오신다지.

잔디 팔러왔다 잔디 실어다주고 심어주게 되셨네.

쇠날 하기로 한다.


준한샘은 굴삭기가 건드린 관을 고쳐주기 위해

상촌까지 왔다가 철물점에 재료가 없어 황간을 다시 나가 사왔다.

굴삭기 작업을 챙기느라 이틀을 아침저녁으로 물꼬 출퇴근.

이이가 자신의 일들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해나가는가를 고스란히 본.

감동이었고,

배움이었다.


그나저나 잔디를 심자면 손이 좀 있어야겠지.

가까운 날이라 샘들을 불러들이기도 어렵겠고,

아무래도 인근에서 모여야 되겄다.

누구를 부르나...


유쾌한 이야기 하나.

아리샘이 오래 전 화장품 하나를 선물했다.

산골 할미를 위해 그가 가끔 하는 일이다.

어찌 바르라 잘 일러주고 갔지만 고새 잊었는데

연규샘이 와서 꼼꼼하게 가르쳐주었다.

‘못 산다... 드린 지가 언제인데... 어서 쓰시고 더 예뻐지시고...

다음에 또 새로운 뭔가를 가져가보지요.’

쓰면서 고맙단 문자 보냈더니 답문자가 그리 왔다.

그런데, 화장품을 여니 안에 있는 거울이 뿌연 거다.

그참, 뭘 이렇게 만들었데, 일을 야물게 안 했군, 그러고 열흘을 썼던가,

거울에 웬 기포가 있다.

살살 만졌더니, 그게 거울을 보호하기 위해 붙여둔 비닐이었던 것.

‘아리아리,

몬산다! 그게 거울이 삐꾸더라고.

오늘에야 알았다, 거울 보호하느라 비닐이 붙어져 있던 것.

왜 이리 뿌옇지, 잘못 만들었네 했다 아이가.’

‘예뻐지기 힘들죠? 내가 이래서 우리 옥샘을 사랑합니다.’


불날 22시 바깥수업을 마치고 김천 발.

봉하마을이 가까운 진영의 점주샘네 자정 넘어 도착.

마침 남도에 몇 가지 일도 있어 하루 말미를 얻은 것.

벗에게 달려오는 길이 얼마나 달던지.

사람을 기쁨으로 만나는 일보다 더한 재미가 세상에 어딨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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