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19.쇠날. 맑음

조회 수 701 추천 수 0 2017.06.30 13:51:15


더웠다.

속초 낮 기온 무려 34도를 웃돌았다고, 서울도 27.9도.

불날은 비가 온다는데.

온다 하고 아니 오거나 오더라도 두어 방울 떨어지던 비였다.

그리 지난 지 달포도 더 됐지 싶다.


자두밭에 갔다.

학교아저씨는 마을에서 나가는 아침 버스를 타고 면소재지로 먼저 갔다.

지난 14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열흘 동안 틈틈이 돕겠다는 자두 알솎기이다.

“그런데, 자두가 이래? 이것도 자두야?”

“여긴 사과밭이에요.”

아하, 복숭아밭까지 있었다.


알들은 와글와글했다.

머리 맞댄 수다 같기도 하고, 공터에서 모의하는 녀석들의 머리 같기도 하고,

턱 아래서 올려다보는 아이들 얼굴 같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솎아내고 남기는 큰 것이

다른 무더기에서 솎아내는 것보다 작을 때도 흔했다.

고루 큰 것들이 있으면 좀 좋으련.

하지만 어디 자연의 일이 사람살이 편한 대로만 있더냐.

떼어내, 말어,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했고,

에라, 될 대로 되라지, 한 번씩 그저 간격만 띄워주어 솎아줄 때도 있었다.

살자고 다 생겼을 터인데,

에고, 상품으로 키우자고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사람의 일이 아득해지다가


그래도 배추처럼 무더기로 갈아엎는 것보다 낫지,

그리라도 위로한다.

AI로 인한 살처분은 또 어떤가.

죽어나가는 것들도 그것대로 그 무슨 날벼락이며

그걸 해야 하는 관련 공무원들은 어찌 잠을 이룰까.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닐 게다.

큰일이다, 큰일. 그 고역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여러 달 뒷목이며 어깨며 심하게 앓아왔다.

노동량이 많은 것이 적잖은 까닭이기도 하겠다만

다 잠 때문이리라 한다.

이러다 심지어 운전대를 잡은 채 쓰러질 수도 있겠구나,

간밤엔 문득 위기감이 들었다. 임계점 같은 거.

그래서 오늘 자두밭행은 조금 늦은 오전에 가마 했고,

기혈 하는 양반한테 혈을 좀 뚫어 주십사 했더랬다.

“풍기가 있네!”

윽! 진단이야 병원에서 할 일이겠지만

몸이 하는 작은 말도 잘 들을 것.

반신불수, 그걸 또 어찌 감당한다고.


자두밭에서 돌아와 그리고 있던 스케치 하나 마무리 지었다,

연재하는 기사에 삽화로 쓰려고.

안나푸르나에 깃든 아스탐 마을 풍경.

연필 가루를 비벼 저 뒤의 설산을 표현하고 나니

채색을 해서 그 질감을 이만큼 살릴 수 없겠다 싶어

더 손대지 않기로 한다.

주에 세 차례 쓰고 있는 30회짜리 트레킹기, 이제 3분의 2를 송고했다.

시작하면 어찌어찌 또 그 끝에 이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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