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선달산 아래 내리계곡에 들었다. 점주샘이 동행했다.
수행도 하고 교류하는 오지 공간의 흙집에서 도배도 돕고.
시골집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낫지 보수가 더 어렵다.
원고도 그렇지 않던가, 퇴고하다 차라리 다시 쓰고 말지 싶은 마음이 열두 번도 더.
그래도 제가 쓴 거면 낫다. 그게 남의 것이기라도 하면
차라리 대신 다시 써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고쳐하는 도배도 그렇더라.
누구 집 냉장고면 어떠랴, 뉘집 부엌이면 어떠랴.
보이는 곳이면 내 일이고, 치워두면 누구라도 잘 쓰리.
그렇다고 제 집 냉장고를 늘 그리 치우냐면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그러니 더욱 머무는 곳에서 제 것인 양 하는 것,
물꼬의 생각이 그러하다.
벽지인들 아니 그렇겠는가.
뉘집 도배이면 어떠냐.
더구나 손이 필요한 곳에 내 쓰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물꼬가 살아가는 방식일지니.
집밥, 그게 무엇이겠는가. 온기가 담겨 있느냐 마느냐 아니겠는지.
간장 한 종지만 놓고 먹어도 온기가 있다면 집밥이고 살 되고 피 되리.
지난번 들린 걸음에도 이 깊은 산에서 먹는 밥에 빠진 온기가 아쉬웠다.
그야말로 때워야 하는 도시 일터의 끼니 같았던.
같이 모여 일하며 먹는 동안에는 바로 그 온기가 있는 집밥이었을세.
밤중 계곡에 내려서서 바위 위에서 수행도 하다.
산이 뒤채고 가끔 잠자던 것들이 뒤척이거나
더러 깨어있는 존재들이 킁킁거리며 가까이 오려다 멈춰 두리번거리는 기척을 느끼기도.
어느 순간 저도 그도 제 각각 제 일을 하는 밤이었으니.
서울에서 있었던 연어의 날 준비 모임을 하는 동안에도 숙소에서,
대전까지 오는 기차 안에서, 영동으로 돌아오는 휴게소에서 원고를 써야했다.
주에 세 차례 쓰는 글이 조금 숨이 가쁘다.
물꼬의 늘린 일도 만만찮고, 제도학교 지원수업이며,
주말마다 1박2일 산오름도 7월까지 계속 되고 있으니.
불날 밤에 또 한 편 송고.
그런데 깊은 산속 위성으로 쓰는 메일이어
사진을 쪼개서(물론 나눠서의 의미) 보내야 했다.
한밤중 두어 시간을 앉아있어야 했네.
그래도 일이 되니 다행하고 고마운.
돌아보면 삶이란 늘 모든 순간이 그리 다행했고 고마웠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