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다.
비 소식은 오다 자꾸 끊긴다.
오늘도 온다더니 겨우 굵은 빗방울 댓이 모두였다.
아침이 오도록 읍내 지나 깊은 골짝에 든 한 시인의 집에 여럿이 거했다.
영광에서 황대권 선생님 오셨다, 영동 읍내에서 강연이 있어.
물꼬랑 오랜 인연이다.
같이 달마다 세미나를 한 것만도 여러 해.
함께 공부했던 이들이 몇 해만에 만난 저녁이었네.
“옥선생, 알아? 권선생님...”
“어! 달포 전에 연락했는데...”
확인해보니 4월 11일에 문자가 오갔다.
돌아가셨다. 설암이었다.
아이쿠...
“왜 내겐 소식 안 닿았지...”
“요새는 다 SNS로 전하니까. 옥선생 그런 거 안 하잖아.”
지난해 7월, 꼭 열 달 전엔 물꼬에서 우리가 같이 있었다.
늙은 전사로 스스로를 부르고
젊은 전사라고 사람들이 불렀던,
평화의 마을 단식을 20년 넘게 끌어오고
생의 마지막엔 한 대안학교의 교장을 맡으셨던 권술룡 선생님 그렇게 떠나셨다.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 소식이 더 가까운 나이이다.
풀을 뽑는다.
하지만 슬픔은 그처럼 뽑히지 않는다.
간에는 다슬기가 좋다 했다.
다슬기로 소주를 내린다는데, 그건 먹기가 거북하다고도 하고
또 병원에서 먹지 말라고도 할 수 있겠네,
그렇다면 음식으로 하면야 못 먹을 게 뭐람,
다슬기를 씻고 해캄하고 끓이고
배추를 솎아 데쳐 된장에 무치고
부추를 잘라와 다듬고 씻고
갖은 재료로 국국물을 내고
다슬기와 배추와 부추를 넣어 국을 끓이고,
이튿날 식힌 걸 팩마다 넣은 상자에다
혹여 싱겁기라도 하다면 풀어 드시라 된장도 한 팩 같이 넣어 얼리고,
이제 댁으로 보내면 되는데,
아직 벗은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지.
어릴 적 태풍이 지나는 길에서 다리로 날려버린 적 있었다.
지나던 군인(지금은 청년이라고 적고 옛적은 군인 아저씨라고 불렀을)이
흠뻑 젖은 아이를 건져주었다.
자주도 툭하면 젖었는데,
지금도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