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한 마리 달골 오르는 길에 등장.
지난 봄 새끼를 거느린 어미가 지나더니
그 새끼 자라 저리 홀로 어딜 가나보다.
“누구랑 살아요?”
더러 질문들을 하는데,
나? 식구가 많다.
멧돼지 둘, 족제비 한 마리, 너구리 하나, 고라니 둘,
고양이 둘(지난봄까진 하나였는데), 다람쥐 하나, 청솔모 하나,
곤줄박이 다섯, 쏙독새 하나, 검은등뻐꾸기 하나,
그리고 나를 순간순간 깨어있게 하는 뱀 한 마리.
어제오늘 두세 시간 자고 움직인다.
일이 그렇다.
팔자에 없이 연재기사를 맡은 덕에, 글 쓰는 일이 중심인 삶이 아닌께로
더 바쁜 안식년인.
사실 물꼬의 삶이란 게 안식년이 어딨겠는지,
사는 게 교육이니 사는 게 끝나지 않은 바에야.
성주의 한 절집에 건너갔다 오다.
지난번 연을 나눠주신 인연.
티벳 네팔 일로 나눌 이야기도 있고 해서.
차며 두루 또 나눠주시었네.
몸 살리는 일에 한 재주하시는 분이라
잠시 척추도 한번 펴주신.
늦은 밤, 붓을 빨고 들어오다.
잡은 지가 여러 날. 틈틈이 그려왔다.
그런데, 이 역시 보지 못한 교정처럼 아쉽게 접은.
지금은 더 끌고 갈 여력이 안 되네.
내일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면
달날 오전 원고를 송고할 때까지 산마을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마무리를 해야만.
이럴 때 만만한 게 아무추어라는 말.
비전문가니까, 그렇게 선을 긋고 사진을 찍었다.
유화의 큰 장점은 언제든 엎을 수 있다는 거고,
언제 짬 되면 손볼.
존경하는 어르신 한 분의 글월을 받았다.
앞으로 글씁네 말 못하겠는 당신의 단아하고 깊은 글월이었다.
이번학기 움직임에 대한 관찰과 조언,
그리고 덧붙여 주신 말씀,
‘그런 면에서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 거울을 반 번 보는 시간이 필요치 않을까 생각합니다.’
낯이 뜨거웠고, 고마웠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