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 눈 쌓인 저 산만 보면

지금도 흐를 그 붉은 피 내 가슴 살아 솟는다/ 불덩이로 일어난 전사의 조국사랑이

...

나는 저 산만 보면 소리 들린다, 헐벗은 저 산만 보면

지금도 울리는 빨치산 소리/ 내 가슴 살아 들린다


김지하의 시를 빌어 박종화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거리에서

오랜 대학시절의 끄트머리를 보냈다.

빨치산 이현상이며들이 숨어들어 마지막까지 뜻을 지켰던 지리산은

주사파가 아니어도 가슴 떨리게 하는 성지였다.

그래서 지리산이 더 좋았을 게다.

그 산을 걷고 있으면 멀리 스미게 서러웠고 깊이 스미게 기뻤다.


얼마쯤의 나이를 먹고 이원규가 쓴 시를 안치환이 부른 노래로 사람들과 같이 불렀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반갑게 노고단, 반야봉, 피아골, 불일폭포, 벽소령, 세석평전, 칠선계곡, 반갑게 들먹이며도 이래서 오지 말고 저래서 오지 말라더니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에서 그만 주저 앉아버리고 마니, 견뎌내던 힘이 그만 다 스러져버리나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견딜 만하다면 오지 말고 견디라는 말에 견딜 수 없어 달려가곤 했다.


가장 최근, 그래도 10년도 더 넘어 된 내가 부르는 지리산 노래는

80년대 운동가요를 생산해내던 정세현이 절집으로 들어가

범능이라는 법명으로 세상을 나와 만든 곡일 거다.

‘천리 먼 길 떠나지만 돌아오마, 살아오마/ 살아 못 오면 넋이라도 고향 찾아 돌아오마/

불타는 남쪽 하늘 전선으로 떠난 내님...’

그리고 그는 몇 해 전 영영 지리산 흙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리산은 산만이 아니라 거기 깃들어 사는 모든 것의 이름이고, 진한 역사의 이름.

비가 거세고 집요하게 내리는 날들 사이 지리산 둘레를 걸었다, 맨발로,

간간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건 아쉽고 안타까운 시절에 대한, 혹은 사람들에 대한 부름이기도 하고

내가 찾는 그이기도 하고,

내가 찾는 나이기도 했을 것.


둘레길이 흔하다. 제주도엔 올레길도 있고.

지리산에도 둘레길이 있더라. 그런데 이 길도 의미야 왜 없겠냐만

아무래도 내겐 산으로 들어가는 게 암만 더 당기다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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