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대안학교라면 물꼬를 더러 안다.

“제가 손 한 번 보태러 갈게요.”

“아이구, 무슨요... 강연자로 모셔야지, 자원봉사로 어떻게...”

짬내기도 쉽지 않았지만 어른이라고 외려 부담스러워 해서 도대체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남도 저 먼 외진 곳 오래되지 않은 대안학교에서

마침 처음으로 계절학교를 연다 했다.

딱이다!

안식년이라 손발 보태고자 한다, 이름 석 자에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설렜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니까!

거기 교장샘이 아주 오래된 인연이지만 일언반구 안했다.

세월 흐른 얼굴 위로 한참 바라보고 인사해야 알만 할 터이니.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으로 가는 셈.


스무 살 혹은 스물두어 살 동료들과 열일곱 새끼일꾼(물꼬로 치자면) 셋이 함께 꾸렸다.

4,5,6년 아이들 스물둘.

물론 전체 진행축(중앙)은 따로 있고.

앞의 이틀은 미리모임(이 역시 물꼬로 치자면), 나흘은 여름학교, 뒤의 하루는 평가모임.

물꼬가 6박7일(교사 미리모임 포함)을 보내는 일정이니

3박4일, 그것도 9시도 되기 전 아이들 일정이 끝나니, 일도 아니었다.

게다 해주는 밥 먹고, 그저 아이들과 보내면 되는.

더하여 편안한 공간과 쉬 쓰는 화장실, 별 다섯짜리 호텔 같은 곳이라면!


차(car)를 가지고 간 덕에 차(tea)를 달일 준비며 앞치마며 한 살림 실어갔네.

샘들 해건지기와 아이들과 하는 해건지기도 진행하고,

물꼬에서 하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여름 마당에서 하는 물놀이)도 하고,

강강술래도 하고,

물꼬에서 부르는 아카펠라도 하고,

모둠교사로도 움직이고 가끔 밥바라지 뒷배로도.

화장실 청소에서부터 내내 빗자루를 들었고,

그 어떤 것보다 생리를 한 여자 아이의 옷가지를 이틀동안 빤다든지

아픈 아이를 살피거나 다툰 아이들의 마음을 수습하거나 잠못 이루는 아이를 재우거나 하는

역시 아이들 곁에 가까이 있었던 시간이 감격에 겨웠던.

내가 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 순간!

누가 그랬더라, 옥샘 계신 곳이 물꼬라고?

그곳은 그 학교이면서 동시에 물꼬이기도 하였네.

그리고, 여전히 맨발로 다녔다.


“사람이 모이면 가장 중한 것이 먹는 것인데 밥바라지분들 애쓰셨습니다.

훌륭한 선생님들이 만든 학교, 아름다운 공간에서

잠시라도 함께 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청년들(청년교사)과 함께 한 것도 기뻤습니다.

쓰이려고 왔는데, 잘 쓰였다면 다행이고 영광일 것이나

혹여 오랜 습으로 만들어진 몸짓 때문에 타인을 힘들게 했다면 부디 용서를 바랍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든 천국이고 극락이고 정토,

깊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갈무리에서였다.


물꼬를 얼마나 그리워했던지, 우리 샘들, 우리 아이들,

아이들을 맞기 위해 학교 안팎 손이 안가는 데가 없도록 청소를 하고,

아침이면 아이들과 보낼 하루를 위해 먼저 일어나 1시간 수행을 하고,

밤이면 아이들과 보낸 시간을 정리하며 나누느라 야삼경 넘도록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북쪽으로 골이 난 대해리 모진 추위와 선풍기 하나 없는 여름날,

오래고 낡은 살림살이와 해우소(재래식 화장실)의 불편함도 우리들의 열정을 막지 못하는.

밤마다 아이들의 똥통을 비우고,

시간마다 빗자루를 들고 쓸고 있는 물꼬 샘들.

“청소의 핵심이 뭐야?”

“후미진 곳!”

“또?”

“모든 사물에는 이면이 있다! 앞이 있으면 뒤가 있다.”

그렇게 청소를 하는 정성으로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기는 물꼬.

위-대-한 이들이다!

정녕 그리운 물꼬의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흐름을 가지고 있는 물꼬,

그게 세월일 게다.

계자만 해도 백예순다섯을 해보지 않았던가.

1994년 여름부터 2016학년도 겨울까지이니 이십년도 한참 더 지난 시간이 아니었던가.

사랑하는 샘들아, 아해들아, 내 도반이여 동지여 동료여 벗들이여!


뜻밖에 고래적 인연들도 만났다.

새끼일꾼 하나의 아버지가 난타 교사로 왔다.

예전에 서울서 **라고 곳에서 활동하셨더란다.

아이에게 물었다.

“그럼, 혹시 ***씨라고 알아?”

“어, 저희 엄만데요, 혹시 저희 엄마가 말씀하신 분이세요? 저 어릴 때...”

부부가 꾸렸던 단체.

그 아이 뱃속에 있을 때 우리 집 아이 썼던 기저귀며 옷가지들을 물려주었다,

나 역시 물려받았던 것들.

순간 말을 잊고, 눈물이 맺혔다.

그 학교 인터넷카페에 자원봉사자 명단이 있었던 모양.

“그 분일 리야(여기까지 올 리가) 없을 것 같은데 성함이 같네...”

엄마가 그랬단다.

그를 장구를 치며 만났다. 이미 대가였던 그니였다. 전통타악연주가 생업이었으니.

긴 세월 지났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이란 참...

점잖은 그니가 훨씬 성님인 줄 알았더니 내게 ‘언니’라고 문자가 왔더라.


물꼬 안에 어린이극단 물꼬를 꾸리기 이전,

그러니까 25년 전 국립극장 워크샵 단원으로 1년을 보낸 적이 있다.

주말마다 모여 연극을 공부하면서 더러 국립극단 단원들과 어울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겨우 워크샵 단원, 극단 배우들은 쳐다보기 어려운 큰 나무였다.

그때 주연을 맡았던 젊은 배우가 있었는데,

20년도 더 전에 뵌 적 있다 인사드리자 마자 돌아오는 말,

“장충동에서 몇 번 술도 같이 마시고, 물한계곡에도 갔는데!”

아니, 언제?

당신은 서울을 떠나 지역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떠났던 서울.

긴 시간 흘러 그리 보았다.


학교의 아버지모임에서 계절학교 동안 애썼다고 진행한 이들에게 밥을 샀다.

막 들어서는데 한 아버지가 말했다.

“영경이 누나 아니세요?”

나를 누나라 부르는 이가 몇이나 되던가.

“저 ***에 있었어요.”

90년대에도 여전히 운동조직은 남아 맥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한 곳에 있던 후배이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마침 그날 그의 동기 하나가 심경경색으로 세상을 버렸고

덕분에 여러 선후배들과 통화를 하는 중 잊고 지냈던 이들이 불려나왔다.

한 절친했던 후배랑은 전화를 바꿔주기도 하였네.

“성철인데요...”

장가를 가고 아이 둘을 낳고,

그 아이들이 커서 대학을 다닌다.

“누나가 왜 거깄어요?”

벌써 쉰이 된 그라니. 3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라니.

참말 질긴 사람의 삶이라, 인연이라.


그 학교에는 커다란 팽나무가 세 그루 있었다.

번호를 붙여주었고,

2번 팽나무 아래 자주 앉았더랬다.

“얘들아, 이게 무슨 나무라고?”

“팽나무!”

“몇 번 팽나무?”

“2번!”

“또 다른 이름으로 뭐라 부른다고?”

“먼산 팽나무!”

먼산이라 불리던 그곳에

물꼬에서 노닥거리는 것처럼 그렇게 이름 하나 남기고 왔더라는.


빛나는 곳에서 빛나는 사람들과 빛나는 시간이었다!

고맙다, 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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