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21.달날. 비와 비 사이

조회 수 779 추천 수 0 2017.09.27 10:24:15


아침이 비 내리는 천지를 밀어낸다.

그러고도 남은 미련이 비에게는 있었다.


빗길에 학교를 방문한 이들이 있었다.

맞지는 못했다.

마을 앞에서 넣은 연락이었다.

들어오는 내 걸음과 닿은 그들의 시간이 멀었다.

보은의 한 폐교에서 동학 인연들이 새로운 일을 도모하며

여러 학교들을 돌아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냥 좀 아는 체 하자면,

학교들을 둘러보실 때

그곳 공간마다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며 둘러보시는 게 도움 클 듯.

그 공간이 어떻게 길들여졌는가를 알면 공간을 만드실 때 가늠이 쉬울 듯.’


사람들이 보따리를 싸고 떠났다,

가재도구도 못 다 챙기고.

여며지지 못한 것들은 서둘러 떠난 흔적을 말해주기 위해 남았다,

깨진 바가지, 다리 꺾인 밥상, 던져진 수건...

새로운 기억은 없고 오래된 기억만 남는

오래인 것만 가치를 가지는 세계,

치매의 머리 안이 그러할 것.

치매를 예비하며 나이가 든다.

요새 부쩍 는 건망증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인간을 지탱하는 것과 인간의 위대함이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도인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어리석음에 의해 지탱되는 인간이 더 강인하고 더 오래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스물다섯 청년이 떠난 인도에서 남긴 글이었다.(후지와라 신야)

오래 살 것 같은 예감이다.


남도의 한 대안학교에서 긴 날을 보내고 돌아왔다.

읍내의 장순샘이 자두와 사과를 실어주었다.

겨우 며칠 보태지도 못하는 손인데도

수확기가 되면 마치 우리 밭에서인 양 실려 오는 과실들.

풍성한 먹을거리도 먹을거리지만

어깨동무한 시간에 대한 기억이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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