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에서 하는 일정에 비 내리기도 오랜만이다.

자근자근 한 마디 한 마디 씹듯이 찬찬히 보내라는 뜻일 듯도.

연휴에 보내기에 좋은 ‘물꼬 stay’이겠다.

류옥하다가 사람들맞이 청소를 마지막까지 윤을 내주었고,

부엌에서는 명절 음식을 조금 더 해냈다.


6일 정오, 사람들이 왔다. 영광이네가 밥 한 끼 덜어준다고 김밥을 싸왔다.

‘물꼬 한 바퀴’를 돌고, 마침 들어온 무산샘도 같이 김밥을 먹다.

달골 올라 비에 젖는 ‘아침뜨樂’을 걷고

햇발동에서 홍차 한 잔 하고 내려와

가마솥방에서 사과잼 만들기.

컨테이너 하나에 가득 담긴 사과를 껍질 벗기고 흠 도려내고

커다란 솥단지 둘을 불에 올리다.

썬 사과 9kg, 설탕은 대개 4.5kg, 그런데 우린 3.5kg만 넣기로.

계피와 레몬으로 마무리.

홍차와 다식으로 잼을 바른 빵을 먹다.

달골 다시 올라 창고동에서 난로에 불 피우고 고구마를 굽다.

그리고 백차와 보이차와 함께 군고구마를 먹으며 ‘실타래’가 이어졌다.

아, 낮 2시, 민규샘과 시영샘이 다녀가다. 무산샘과 넷이 짧은 집짓기 모임.

연휴로 밀린 일정, 끝나고 바로 집짓기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인지.


7일 '물꼬 stay' 이튿날.

아침 해건지기, 그리고 아침 밥상을 물리고 아고라 풀을 뽑았다.

무대에 서서 노래도 한 자락씩.

수정샘, 성품대로 야물게 해내는 일손이더라.

내려와 낮밥을 먹고 난 짬에

학교 뒷마을 새 집에 들어온 이가 우르르 찾아온 친척들과 함께 인사를 왔네.

차를 내다.

잠시 책방에서 늘어졌다가

모두 골짝 끝마을 돌고개까지, 더러는 맨발로 걸었다.

나그네들처럼 작대기에 조카 신발을 걸어 나란히 잡고 앞에 걸어가는 수정샘과 진영샘 부부는

그림엽서가 따로 없었다.

때때마다 그 일정을 대표하는 풍경이 있고는 하던데,

두멧길에서 호두를 주워 야구공 삼아 홈런을 시도하는 모두의 몸동작이

오래오래 마음에 머물 듯.

마을 들머리 삼거리에 이르러 막 닿은 현준이네도 만났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마당에서 장작놀이.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밤참으로 만들었더라.

달골 창고동에서 다시 차를 마시거나 곡주를 들거나.

‘夜단법석’이었다.


사흗날 아침도 해를 건지며 열다.

도시락을 쌌다. 민주지산을 오르기로 하다. 우듬지 아래 평상 모인 곳까지만.

아이들이 덩달아 맨발로 걷더라.

계곡에서 판소리도 한 자락.

진영샘이 하산주를 하자 사람들 등을 떠밀어 가게를 들어갔다.

백 번은 족히 될 민주지산 오름에 처음으로 들어선 가게라.

맛으로도 인심으로도 퍽 아쉬웠던. 내가 다 미안하였네.

돌아와 갈무리 모임이 바로 이어졌다.

연휴 물꼬 식구들도 편히 좀 지내시라,

하룻밤 더 묵어가리라던 현준네도 같이 자리를 떴다.

"김치에서부터 나눠주고 간 갖가지 반찬 한동안 잘 먹겠으이." 


속내 잘 안 드러내는 영진샘이 꺼내준 마음,

윤실샘의 따숩고 맛깔나는 한담,

진영샘의 치열한 삶,

<사피엔스>를 다시 읽고 왔다는, 김밥 장수로 왜 안 나서는지 모르겠는 수정샘의 정갈함,

사람들이 돌아가면 그들이 던진 것들이 나를 또 가르친다.

앉아서 수만 스승들을 만나나니.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영광이로 덩더꿍 더 즐거웠다.

나뭇잎에 부서지는 또 하나의 햇살이던 현준이, 윤진이도

어른들의 행복을 더했다. 

행복한 아이는 주위도 그렇게 만든다.

그것이 또한 우리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야 하는 까닭이기도!


여담 하나.

초등 6년 영광이, 첫 밤에 무산샘(쉰쯤이시던가)과 같이 잤는데,

"무산샘 결혼했어요?"

"안 했는데..."

"애인은 있어요?"

"없는데..."

"그참, 아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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