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霜降).

서리도 맞고 사람도 맞는.

맞이 준비는 늘 해도 모자라더라, 청소처럼.

그래서 어디쯤에서 자, 여기까지, 그렇게 외치고 멈춰야 한다.

학교 본관이 아니라 달골에서 모두 자기로 했다.

이불 배치.

창고동을 쓸 열 사람을 위해서는 겨울침낭을 준비해오라 했다.

간밤에 산에서 자 본 바로는

난로까지 피워진 안의 공간이라면 겨울침낭으로 충분할 것이다.

핫팩도 준비해놓았다.


아이들이 들어왔다.

호박을 썰다 나갔다.

물꼬의 일정이라는 것은 이곳의 삶 속으로 들어와서 같이 살다 가는 과정.

이벤트라기보다 이곳 삶의 연속성 속에 있는 것.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제목을 붙인 그것만이 아니라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그 안에서 밥 먹고 쉬고 자고 하는 것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

아이구, 내 새끼들 왔구나,

집에 들어선 대처 나가 돌아온 자식들이거나 외가에 찾아온 손주들 맞듯.

이곳에서 어떤 프로그램에는 참가비를 내고 오기도 하지만

돈을 냈다, 라는 생각은 다분히 자본주의식일.

여긴 비록 그 체제 아래 살지만 나름 저항하며 사는 곳.

그 돈을 냈든 내지 않았든, 적게 냈든 많이 냈든 이곳의 밥은 동일할 것.

돈이 있다고 그 밥을 주고 없다고 안 주는 밥이 아니다.

여긴 돈 내고 밥을 사 먹는 음식점이 아니니까.

‘라면을 먹어도 집에서 먹어야 살로 가지.’

무식한 울 어머니 말씀하셨듯 밥은 결코 돈이 아니다.

세상으로 나가 그저 다음 한 걸음만 내디뎌줘,

그 디딤을 위해 산골 할머니가 아무 조건 없이 기도하듯 차린 밥상!


‘안내모임’.

“사는 일이 얼마나 여러 길일까.

다양한 삶, 물꼬도 그 중에 하나. 여기에서 사는 대로 살다 가시라.”

“세상만사 마음먹기 나름. 지내는 것도, 삶에서도. 그저 사흘, 불편해도 한번 지내보시라.”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물꼬에서 매순간 하는 그 말이

단지 정리의 의미만이 아니라 정성스러움에 대한 말이기도.

정성스럽게, 고요하게, 우아하게! 삶의 격조는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던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보시기.”

“밥도 따로 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다. 샘들이 수행하듯 준비할 것.”

“까불지 말고! 니 만큼 안 똑똑한 사람이 어딨노, 하시던 무식한 울어머니 말씀을 생각한다.

쇠털같이 많은 날, 그 사흘 나 좀 다고.

아무렴 귀한 아이들 불러 모아놓고 그 시간을 허투루 새게 하겠는가.

오직 풍덩 빠져 지내보시라.”


‘물꼬 한바퀴’.

물꼬의 구석구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돌아보며 듣고들

있을 게 다 있네,

생각보다 너무 근사한 곳이네,

의미가 깊네,

잘 왔다고들 했다.

그런데, 아쿠. 물꼬의 여느 일정대로 시작할 때의 느지막한 낮밥이면 되겠거니 했는데,

오면서 주전부리도 하고 오는 걸 감안해 배가 좀 출출할 때쯤 먹자 하던 것이,

이 아이들의 학교는 11시 30분이 점심밥이라는.

미리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밥부터 먹어야한다면 또 그리 시간을 짰을 것이나 괜찮다고들도 하길래

늦은 낮밥...

음, 이번 일정이 뭔가 삐거덕거릴 듯.

인솔교사들이 밥바라지로 붙기로 하여 물꼬 샘들이 굳이 들어들 오진 않았는데,

밥바라지들 넷이 서로 충분히 호흡을 나누지도 못했다.

아차차, 그 자리가 가장 어려운 자리임을 수차례, 심하게는 사무치도록 아는 바이건만.

모자라면 나눠 먹거나 기다렸다 또 먹거나, 한 끼쯤 안 먹는 게 무에 대수겠냐,

그렇게 내 집 식구, 내 새끼들한테 하듯 할 수 없을,

여태 물꼬가 살던 혹은 하던 방식과 다른 걸 요구 받을 수도.

서로 다른 생각이, 혹은 제도스러움과 비제도그러움이 까끌댈 수도...

밥바라지 그거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쓰는 일,

기꺼이 마음을 내고 몸을 쓰는 일,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의 일이 아니라 필요한 자리에 손을 보태는 일,

자기를 놓고 오직 앞에 놓인 존재에게 엎드리고 또 엎드리는 일!

그리할 때 비로소 저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존재의 희열을 만나는.

내가 일 좀 했네, 내가 도왔네, 내가, 내가, 내가, ...

그런 상황을 이곳에서 얼마나 무수히 보았던가.

결국 자기 꼴(그릇)대로 생각하고 그래서 좌절하게도 하는.


‘가을길 비단길’-‘소금꽃’.

두멧길을 걸어 아침뜨樂에 이르렀다.

미궁 자리 일부와 아고라 한 부분과 달못 둘레 귀퉁이 풀을 뽑았다.

선한 일에 동참하는 일, 아이들이 그 뜻함을 융숭히 받아주었다.


‘실타래 1’.

물꼬 노래집 <메아리>로 시작하다.

거기 물꼬가 하고픈, 바라는, 사는 이야기가 또한 담겼으니.

어디서 이런 참한 아이들이 왔는가,

이곳이 지닌 질감을 잘 받아주고 담아주는 아이들을 보며

그 아이들을 길렀을 어른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보는 어른들의 모습이 그들에게 역시 고스란히 있을지니.

물꼬 이야기도 전하며 집단상담 분위기 만들기.

그 사이 샘들이 면소재지에서 통닭을 시켜주었다.

그런 일이 다 있었네...

마을에서 펜션 하는 이가 들어오다 실어왔다.


‘밤결명상’.

한밤 산허리를 돈다.

앉아 호흡하는 것만이 명상이겠는가.

집중하는 모든 것이 명상일.

어둠 속에 모든 귀와 눈과 코를 열고 걷기.

달골 창고동에서 ‘하루재기’를 하고

잠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차를 냈다. 그런데,


아차차. 침낭을 믿고 난로에 불길에 멈췄을 때가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아이들은 창문이 열렸는데, 욕실문도 열어둔.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다. 미안타. 사내아이들이라고 소홀한 부분이 없잖았다.

더구나 햇발동은,

샘들 옆방이라고(부담스러웠다나) 대여섯은 잘 수 있을 별방(5명 배정)에 두 명만 잤다 했다.

새벽, 창고동 1층에 잤던 아이들은 2층 방으로 모여 온풍기 두 대를 틀고 잤다.

셋은 새벽에 햇발동 거실로 모였기 따뜻하게 눈 좀 붙이라 했네.


그리고,

이곳은 무슨 수련회 장소가 아닌.

삶의 연장, 일상과 함께하는, 물꼬의 일상이 나란히 흐르는.

그 삶 속으로 아이들도 들어와 함께 지내는.

이번학기 아침뜨樂 아래 집 하나 짓는다.

지난 흙날 터를 파고 오늘 기초를 놓다.

믹서트럭이 들어오고 기초를 위해 콘크리트 치다.

그런데 첫 삽을 뜨며 이웃 밭과 경계 문제로 갈등이 있었더니

오늘은 달골로 오르는 농로의 감나무 가로수로 소란이 있었다.

나이든 한 기사는 얌전히 지나 큰 문제가 없었다는데

젊은 기사 하나가 마구 차를 들이민 모양.

다음 주쯤 감을 딸 참인데, 믹서트럭에 치여 감들이 떨어진.

그참...

다행히 가까이 지내는 어르신이라 교장샘 얼굴 봐서 내가 참는다로 넘어가신.

11월 30일까지 예정하고 있는 공사기간,

또 무슨 일들이 우리 앞에 놓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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