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는 아침백배 시간이었는데, 사실 저도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이 당겼습니다. 백배 중 절을 삼십번쯤 할 때 땀이 나고 바지가 꼈지만, 선생님은 아무런 내색하지 않으시고 일정한 자세로 계속 소리를 내주시며 절하는것보고, 힘들지만, 이 순간의 힘듬은 과거가 되고, 힘든 과거는 추억이 될거란 생각과 내가 앞으로 엎드릴 절 한번에 최선을 다하고 지나간 절은 잊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니 힘듬은 찰나였습니다.’(갈무리글 가운데서)

나는 지금도 밥보다 잠이 더 좋더라.

열예닐곱 그 맘 때 밥도 좋지만 잠은 또 얼마나 달 것인가.

엊저녁 하루재기에서 아이들에게 물었던 바

밥보다 잠을 더 자고 싶다 했다.

느지막히 일어난 아이들과 ‘해건지기’.

종교성이야 있겠지만 특정종교라기보다

수련이고 기도이고 삶의 태도일 우리들의 수행시간.

거뜬히들 하는데, 찡했던!

우리 무슨 깊은 인연 있어 이 변방 산골에 모여 이렇게 아침을 여는가...


늦은 아침을 먹은 뒤 ‘반짝 한데모임’,

인솔샘들로부터 아이들 밥이 모자란다는 의견과 밥 때가 힘들다는 의견이 있어

아이들의 생각과 시간흐름을 잡기 위하여.

잠자리에 대해서도.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될 것이다!

구성원들이 머리 맞대고 충분히 대안을 마련하면 될.

가끔 학교라는 공간이야말로 얼마나 불구적인 곳인가를 생각한다.

우리 사는 세상이 학교처럼 가공된, 인위적으로 그렇게 짜여진 대로 일이 전개되는 게 아니니.

문제해결능력, 물꼬의 삶이 끊임없이 그것을 기르지 않던가.

“지금 좋아요!”

대략 무난하다는 의견대로 이대로 흘러가보기로 한다.

쇠털같이 많은 날 가운데 사흘이 무에 그리 대수이겠는가.

(그러나, 그런데, 그 사흘이 우리 생을 흔들 수도!)


‘천지삐까리’.

천지에 빛깔은 얼마나 무수한가.

그 빛깔을 좇아가는 우리들의 예술활동쯤.

먼저 소리에 다가가기.

몸으로 타악기 가락을 익히면 악기를 들었을 때 바로 할 수 있을.

곁두리를 먹고 미숫가루와 쑥빵과 팝콘을 먹은 뒤

이제 악기들을 안았다.

풍물 공연 뒤 아이들의 위풍당당 얼굴은 그야말로 생생했다.

그 진지함들이라니, 그 의젓함들이라니.

‘이 아이들을 좀 보셔요!’

눈물이 다 글썽여진.

특히 북을 맡았던 아이들의 그 북채를 잡은 어깨는 오래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몸으로 땅을 만나고 하늘을 만나고 들을 만나는 ‘걷기’.

맨발로 노닥노닥 끝 마을 어디쯤까지.

도란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시간.

어떤 꿈을 가졌는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을 나누기도.


저녁밥상을 물리고 ‘춤명상’.

천찌삐까리 시간이 준 감동이 더 큰 물결로 이어진.

춤으로도 명상이 되다니, 그리들 말했다.

남자 아이들이 서먹하기 쉽고 어색해하기 쉽고 쑥스러워하기 쉬운 춤명상을

진지하게 하고 나누던 표정도 잊히기 어려울 것이다.

샘들도 같이 해보셨음 좋을 걸.

아침 수행에도 아이들과 함께하시기를 권하였으나 그런 거 많이 해보셨다 했다.

하기야 그런 분들이 아니고서야 어디 밥바라지를 하겠다 쉬 나설 수 있으셨겠는지.


드디어 ‘실타래 2’(집단상담).

이 시간이 이번 물꼬머물기의 고갱이 일.

어디로 향할 것인가, 어디 이 나이의 고민이기만 할까만

어느 때보다 내일로 가는 안개 낀 길 앞에서 고뇌할 청소년기라.

다음은 아이들이 남긴 갈무리 글의 일부들이다.


‘제가 물꼬에 와서 가장 오길 잘했다 한 순간이 있었는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의 가장 큰 고민과 그 고민을 앞으로 어찌 풀어갈지 알게 되어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이곳 자유학교 물꼬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실타래 시간이었다. 평소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할 수 있어서였다. 물론 이야깃거리로 들고 온 내 고민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조금 많이 위안이 되었다. 다음에도 이런 자리를 빌어 또 다른 나의 고민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싶다.’


‘이번 물꼬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활동은 10/24 밤에 소통나누기(?)였었는데 친구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나만 생각했던 고민이 아니었던 것을 알았고 또 옛날의 나와는 다르게 성숙해진 것을 느끼게 되는 활동이었습니다.’


‘특히 실타래 시간에는 친구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며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습니다.’


‘물꼬 스테이 중 가장 의미있던 시간은 실타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서로 마음속에 품어왔던 고민들을 애기하면서 마음이 후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먼저 가장 인상 깊었던 실타래 시간에는 친구들의 사연을 듣고, 나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선생님의 대답을 들으면서 고민이 해소가 됬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말은 “공부는 사람의 성실함을 판단하는 척도”란 것이었습니다.

공부에 의미를 두며 나중에 쓰이지 않을 과목을 불평했던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여행을 끝내는 동안에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野단법석’.

마당에 장작불을 피웠다.

감자도 넣었다.

그을린 감자껍질로 인디언놀이도.

어묵탕과 골뱅이 소면으로 밤 곁두리를 먹고

다시 ‘밤결명상’.

어둔 산길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만났을까...


달골 창고동에서 ‘하루재기’.

잘 왔다 했고, 많이 배웠다 했고, 밥이 맛있었다 했고, 진로에 도움이 컸다 했고,

그리고 행복하다고도 했다.

“5만원이 안 아깝고...”

학교의 지원을 받고 아이들 편에서도 비용 일부를 부담해서 왔다 했다.

“계산은 바로 해야지요! 여러분들이 내신 비용은

물꼬가 옳다면, 그 물꼬의 존립을 위해 후원하신 것이고...

아무 조건 없이 이 산마을에서 누군가 나를 위해 기꺼이 밥을 차리고 잠자리를 냈더라,

기도하듯 정성스럽게 밥을 했더라,

그 힘으로 다음 걸음을 걸으시길...”

어디에서 이 고운 아이들이 왔는가.

물꼬의 새끼일꾼들 못잖은 빛나는 형님들이었으니.

아이들이 한 인솔교사에게 갖는 깊은 신뢰를 또한 읽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녕 나는 그런 믿음을 주는 교사이던가...


“오늘은 차 안 마시나요?”

늦은 밤이라 다음을 기약한.

그리고 밤새 난로의 불을 지켰다!

(겨울밤 계자에서 십년을 넘게 학교 본관 보일러실 아궁이를 지킨 기표샘을 생각했고,

자주 하는 말이지만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랄프를 또한 생각한,

아이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꿈을 꾸는.)

한꺼번에 장작을 넣으면 오래는 갈 것이나

그러다 너무 더워 아이들이 이불을 마구 걷어차면...

욕실창도 꼭꼭 닫아주었고,

욕실문도 잘 닫혔나 확인도 여러 차례.


참,

아침에 아이들이 달골에서 칫솔을 챙겨오지 않고 학교로 내려왔더랬다.

마침 트럭 있어 아이들을 데려 올라갔는데,

칫솔을 꼭 가져와야만 한다는 어른과

하루 안 닦는 이가 그리 큰일이냐 생각하는 어른도 있었다.

문제는 그런 차이들이 불편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쉽지 않은 여정이고 있다...

서른 규모가 물꼬 삶에서 뭐 그리 어려운 규모일 것인가만

크기가 문제가 아닌.

흘러가 보자...

무슨 일인들 없을까, 우리 삶,

무슨 일인들 없을까, 사람 모인 일에,

문제가 있다면 그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면 될 것이다.

애정이 있느냐 없느냐야말로 문빗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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