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잎에 앉은 낙엽들을 털어냈다.
밤에는 달골 오르는 길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멧돼지 새끼를 보았다.
앞서간 건 어미였을.
불날 달골 집 짓는 현장 다시 돌아가다.
우두머리샘 싣고 온 자재와 배달 돼 온 트럭 자재를 모두 붙어 내리다.
상수샘도 대전에서 들어왔고,
학교아저씨도 오늘은 올라와 손을 보탰다.
무산샘은 자재를 부리고서야 둘레길 표시목들을 실어 해남으로 떠났고,
늦은 저녁을 먹을 무렵 돌아오다; “오늘은 닭을 삶을 것이니 서둘러 오시기.”
장순샘도 건너와 밥상에 앉다.
지붕과 북쪽 면을 덮을 징크 작업이 하단부터 시작되었더랬고,
징크 테두리 밑단 비닐 벗기는 일에 손을 보태었네.
학교에서는 고래방 앞 김장 통들이 꺼내져 볕을 바랬다.
문득 흘러나온 한영애의 노래 때문이었는데...
냄새도 그렇지만 음악도 참 질긴 물건.
사람은 가도 음악이 남는다.
그렇게 남아 명치를 날카롭게 찌른다.
결코 예보되는 날씨일 수 없는.
두터운 외투도 우산도 준비할 수 없는.
아무도 날 공격하지 않는데 스스로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그러니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려면
그나마 신나는 음악을 가르쳐주라던가.
한때 숨어드는 방이 있었고, 그 방에서 나는 한영애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사람도 떠나고, 그 방을 떠나온 지도 오래인데
나는 오늘 그곳으로 불려가 아팠다.
아이들과 부르는 물꼬 노래집 <메아리>를 생각했다.
거기 담긴 노래들, 아이들과 불렀던 순간들을 생각했다.
좋은 노래를 아이들과 잘 공유해야지 싶었네.
“하룻동안 되겠어요?”
그래야지.
스페인대사관 비자수령, 본인이 직접 가야한대서.
물날 아침 해먹고 나서서 서울 갔다가 저녁 차리는 시간에 맞춰 달려온.
집은, 북쪽 면에 징크를 붙였다.
사람들은 무사히 저녁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