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 2.흙날. 맑음 / 김장

조회 수 721 추천 수 0 2018.01.11 04:27:13


11월 30일 끝날 줄 알았던 집짓기 일정, 그 다음으로 잡은 김장 계획이었으나

달골 집짓는 현장이 돌아가는 속에 아래에선 김장을.

위탁교육도 열 사흘째.


김치냉장고가 따로 없는 물꼬는

아무래도 김장이 더디다, 땅에 묻게 되니.

우리가 김장을 해야 비로소 마을의 김장철이 끝나는.

올해는 눈도 없고 바람도 없고.

해마다 물꼬 김장에는 펄펄 날리는 눈과 함께,

그러니까, 이 정도는 김장으로 안치는 게지.

"아 그래, 배추 씻을 때가 됐는데 금용이 형은 안 온대요?"

장순샘이 그랬다.

그렇구나, 올해는 통 뵙지 못했다.

이태 김장을 금용샘이 와서 도왔더랬는데.

사람에 대한 기억은 음악에, 공간에, 때에도 남는 것이라.


"장순샘 생일기념 물꼬 김장이야!"

이른 아침 호흡명상만 한 뒤 달골 집짓는 현장 사람들 밥을 멕이고

서둘러 학교로 내려와 김장할 식구들이 미역국을 먹다.

"현장은 현장대로 돌리고, 아래는 아래대로 돌리고."

조그만 파이 하나 달랑 접시에 놓고 곁에 촛불 하나 있는 밥상이었는데,

파이를 잘라 먹으며 점주샘 그랬다.

"주인공이 커팅식을 안하니..."

그의 말 감각은 나이 먹으며 더한.


"배추가 밭으로 가겠네."

영하 8도였던 간밤, 날도 차니 절여지는 시간이 모자랐던 게다.

물의 염도를 올릴 일은 아니었고.

장순샘과 점주샘이 뿌리 부분에 한 켜 굵은소금을 몇 알씩 쳐주었다.

느긋하게 속을 준비하며 잊어먹기로 했다.

생굴회와 좀 절여진 배추와 김칫속이 놓인 낮밥.

곡주 한 잔 꼭 해야된다고 수육은 저녁에들 먹자데.


북어대가리에서부터 새우 뒤포리 굵은 멸치에

다시마며 온갖 가지 채소를 넣고 다시국물.

찹쌀풀 대신 묽게 찰밥을 하고.

새우젓과 멸치젓은 장순샘네에서 가져온 걸로.

“바쁜데 뭘 달이고 그래요. 그냥 써요.”

멸치젓갈을 달이려고 부엌 뒤란 가마솥에 장작불 피우려던 어제,

장순샘이 말리고 갔다.

올해 얼마하지도 않는 김장인데, 집짓느라고도 바쁜데 굳이 뭐 그렇게까지 하냐고.

저네 김장하고 남은 멸치액젓과 새우젓이 그렇게 왔다.

마침 쿰쿰해서 요리에 쓰기엔 마뜩찮던 냉장고를 오래 지키고 섰던 새우젓도 꺼내고.

양이 많을 땐 마늘 생강 무 가는 것도 일이더니

김장 양이 줄자 것도 방앗간까지 가지 않고 부엌에서 그냥.

매실청은 남도 집안 어르신 댁에서 온 게 있네.

먼저 먹을 것에만 갓과 당파와 양파를 넉넉하게.

나머지 무는 그냥 퉁강퉁강 썰어 무김치로 따로.

그러고 보면 올해는 동치미도 파김치도 부추김치도 총각김치도 아니한다.

김장에 덩달아 하는 고추장도 메주도(청국장도 요때 챙겨 해먹는) 쑤지 않으니

일도 아닌 게다.

배추가 크다지만 마흔 포기도 안 되고(내년 일정이 어른의 학교만 이어진다고),

게다 일 좀 하는 점주샘과 장순샘까지 붙었으니.

기락샘과 류옥하다는 들어올 필요도 없노라 할 만.


“숨이 좀 죽었나...”

점심도 먹고 해 기우는데도 배추는 풀리지 않는 노여움처럼 기세가 등등했다.

장순샘은 감기 기운까지 있어 난롯가에서 졸음에 겹기까지.

그렇다고 절여질 때까지 기다린다고 앉았기만 할 이곳 일이 아니지.

손 있는 결에 가마솥방 구석구석이며 청소를 하다.

“이제 고만 (시작)하자!”

“물기가 많으면 동치미처럼 먹지 뭐.”

샐러드처럼 먹는 심심한 배추김치도 좋을세.


낮 4시 절여진 배추를 건져내고,

그 사이 가마솥방에서는 배식대 쪽으로 식탁을 붙이고 비닐을 깔고...

물을 충분히 빼지 못하고 들어온 배추에선 아직 물 줄줄 흘러 짜 가면서,

학교아저씨는 곁에서 배추 밑뿌리도 따면서.

그 사이 또 달골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저녁 한 끼 챙겨먹고.

가래떡도 하나 고구마도 하나 난로 위에서 꺼내먹고.

드나들며 중앙들머리에 매달린 곶감도 빼먹으면서.

상에 놓은 햇김치 있어도 버무리는 곁에서 배추 속을 떼먹으면서.


간밤 9시 넘어 시작해서 이 밤 9시 넘어 끝냈으니

딱 스물네 시간 동안 한 김장 되었네.

“그대 와서 손 보태서 수월한 건 내 복,

배추 많지 않은 때 와 손 보태서 수월한 건 네 복!”

고마움에 대한 치사 대신 이런 농을 해도 그 마음 다 알,

벗이 있어 좋고 든든하고 고마웠던!

삶의 허망함 혹은 고단함을 딛고 어떻게든 나아가게 하는 연대가 있나니.

보름달도 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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