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옆 마을 눈이 풀풀거리며 건너오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 마을에 내리는 몇 가닥이었을지도,

밤에는 별 초롱했다.

매서운 추위가 겨울 밤하늘을 더욱 짱짱거리게 한.


달골 willing house를 짓는 두 달의 대장정을 어제 끝냈다.

겨우 열다섯 평, 고가 좀 높긴 해도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오두막처럼 한 덩어리 집.

마감까지 되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벽과 지붕 있고, 수도 연결되고 보일러 돌아가는.

살기 위해 안에서 해야 할, 가구는 둘째 치고 마감이라고 부르는 일은 줄을 선.

목조주택이면 한 달 이내로 시공 가능하다는데.

그러니까, 일이 끝난 건 아니고 시공자를 보냈다는 의미.


비로소 쉬어준 아침이었다, 모두.

어제 나갔던 시공 우두머리였던 동현샘이 다시 들러

빠트린 물건 두엇 챙겨가고,

현장에 무산샘 점주샘과 남았다.

사람이 빠진 햇발동 청소부터 하고,

점주샘과 계단들 흠을 메우고 사포질하고, 창틀도 사포질 혹은 마감 칠.

무산샘은 밖으로 빼내 남쪽 베란다 창 앞으로 늘어선 물건들을 계속 정리 중.


학교 식구들 모두 바깥밥을 먹기로 한 저녁이었다.

밥 한 끼 시간을 버는 것도 있었지만

때마다 현장 사람들을 멕여야 했던 짐에서 벗어나

혹은 모두 시간에 맞춰 먹어야 했던 틀에서 벗어나

따순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여유롭게 밥상에 앉는.

아, 이 가뿐함!


현장에 복귀해 한쪽에서 사포질을 계속,

무산샘은 콘센트들 가운데 뚫린 구멍을 석고보드로 메운다거나 하고.

그렇게 구멍 숭숭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잘하게 갈 손길이 어디까지일지.

결국 페인트칠은 바깥사람들을 동원하기로 했다.

우리 손으로는 일주일도 넘을 듯.

다른 일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일과 모레 이틀 들어오기로 했는데.


몇 품앗이샘들이 들어오겠다 연락이 왔다.

밥 한 끼 내는 일이 허락되기 어려운 지금 상황이라.

그렇다고 현장에서 같이 일을 할 것도 아닌.

이제는 단순노동보다 마감을 위한 기술을 요하기.

어쩌다 쉬러온 걸음을 여기서까지 일을 안길 수도 없고.

계자 아니라면 샘들한테 일을 안길 생각이 없다.

지난 연어의 날을 지나고 후회 깊었던 건

찬이 부족했다거나(물론 부족하지도 않았거니와) 잠자리 안내가 미숙했다거나

처음 온 이들에게 더 친절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몇 날 며칠 샘들이 묵정밭 같은 공간을 치워내느라 너무 진을 빼게 한 것,

그런 일은 상주하는 이의 몫으로 더욱 돌리지 못했던 것,

내가 더 많이 움직이고 샘들을 부르지 못했던 것.

이제는 몸을 쓰는 일을 덜 나누고픈.

왜냐하면... 세상이 그러하니까, 시절이 그러하니까, 힘든 일은 잘 안 하는 요새이니까.

물꼬에서 살아가는 일이 적지 않은 노동과 함께임을 알지 못하는 이라면 폭력일 수 있을.

물꼬의 일들은 때로,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오더라도, 요새 젊은이들에게

상상할 수 있었던 노동이 아니거나 감당하기에 잔인할 수도 있다는 것!

곧 성탄 즈음,

여느 해라면 새끼일꾼 포함 중고생 청소년들이 계자를 하는 즈음일 걸

안식년이라고 그 일정이 없어도

청소년기를 보내며 물꼬가 힘이었다는, 대입을 끝낸 수험생들과

대해리가 그리웠던 새끼일꾼들과

물꼬가 그리웠던 샘들이 모이려고 도모도 했던 바,

아무래도 이곳 사정이 여의치 않네, 통문을 돌려야 했으니.


오늘도 또래 프로젝터들은 늦은 밤 일을 마치고 안마를 하며 거실에서 복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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