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병이다.

새로 짓는 건물 안,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바닥으로 내려오며 일을 하나씩 정리해 가는데,

이제 더는 쓸 일 없이 이동식 비계를 밖으로 빼도 되겠다 했는데,

웬걸, 거실 허공 한가운데 조명 구조물이 있네.

마감재도 칠하지 않은 채, 구조물을 건 사슬도 칠을 하다 만 채 매달린.

그게 또 엄청 크다. 그런 구조물에 대한 시공자와 건축주의 합의는 있었어도 아차,

그 크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는 줄 몰랐던.

또 언제 비계를 쓰나,

벽 퍼티 작업이며를 할 때 이게 먼지는 또 얼마나 뒤집어 쓸 것인가,

해치우기로 했고, 간밤 무산샘이 들어왔기 점주샘과 같이들 끌어내렸다.

일은 그렇게 예상했던 차례를 밟지 못하고

번번이 다른 일로 돌아가게 하며 날이 간다.

구조물 사포질과 마감 칠에 다른 일이 또 밀릴.

그럴 줄 모르지 않았기에 달골 현장 시공자를 빼는 일을 서두르려 한.

그래서 차분히 여기저기 돌아보며 그야말로 ‘마무리’가 가능할,

그리하여 마음 좀 가뿐해져 떠나는 걸음(물론 바르셀로나행을 말하는)도 가볍도록.


일을 하다 다치는 대부분은 서툴기 때문이다, 오만함이 아니라면.

아무리 바빠도 익은 사람은 그렇지 않을 테다.

왼쪽 가운뎃손가락을 다쳤다, 조금.

사각 조명 구조물을 남쪽 마당으로 끌어내 마감재를 칠하기 전 사포질 중이었는데,

아악!

하오 기차에 올라 서울행도 당일치기 해야는데,

날이 더 차기 전에 밖에 내놓은 이 일을 마무리해야

다시 들여놓고 비계를 돌려줄 수 있단 말이지,

내일 사람들이 페인트를 칠하러 들어오기 전 마무리를 해버려야지,

그렇게 바쁜 마음도 한 몫했겠지만,

서툴렀다.

무슨 사포질에 그리 힘을 주었더란 말이냐.

10밀리는 될 나무가시를 뽑아는 냈는데,

아리고, 붓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남은 끄트머리가 있는 듯도.

지금이 어느 땐데 손가락이...

돌볼 틈 없이 움직인다.


16일 시공자를 내보내고도 그렇게 현장은 돈다.

적어도 널린 물건들을 가지런히 해두고 가야지,

구멍 숭숭한 것들은 메우고 가야지,

창 너머 안으로 덜 된 공간이 버려진 듯 보이지는 않게

커텐은 아니어도 뭐라도 막음은 하고 가야지,

돌아와서도 새로운 학년도를 시작하는데(못 다 한 내부 일만도 적지 않을 터인데)

집짓는 일이 주가 되지는 않도록 하고 가야지,

달골 들머리에 키 낮은 대문 하나는 먼 길 가기 전 달아도 놓고 가야지 하는데...

오늘은 페인트 칠을 앞두고 계단 바닥을 쌌다,

점주샘이 잘라 놓았던 종이박스를 바닥마다 놓고 포장하듯.


늦은 낮밥을 먹고 점주샘 나서다,

하루걸음 서울 길로 나선 날 영동역까지 데려다 주고.

밤에 눈 많다 하기, 자정에나 들어올 걸음이라, 아예 택시를 타고 들어올 생각.

택시는 정말 눈길에서도 얼마나 장사인지. 늘 준비를 해 다니신다지.

(눈이 쌓이지도 않고 몇 날리는 정도여 무산샘이 태우러 나와 주었네.)

점주샘은, 닷새를 넘고 엿새를 넘고 그러다 한 주가 되고 열흘도 지났다.

그리고 또 며칠.

잠시 얼굴 보러 들어왔다가

뭐라도 거들어야 될 상황이라고 돌아갔다 사흘 만에 큰 가방에 짐 싸서

새참으로 쓸 순대며 현장 사람들 먹으려 삼겹살이며를 싣고 들어와

날이 그렇게 훌쩍 흘렀다.

“친구 잘 못 만나...”

기락샘 말마따나 참...

내가 퍽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내가 생각대로 살겠다는 뜻이 정작 다른 이를 힘들게 할 때도 흔하다,

나는 결코 독립적인 인간이 못된다, 자조 섞인 말을 뱉을 때가 있다.

그런데,


내게 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언제더냐 묻는다면, 주저 없이 지난 열댓 날을 꼽겠다,

세상에서 가장 잘한 것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로 꼽는

아이 뱃속에 키우고 낳아 젖 먹이던 한해라고 대답하는 그 2년여와 함께 나란히.

하루하루 충실했고, 무엇보다 마음 좋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일도 되었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했고,

아플 때 아프다고 말했고,

걱정될 때 걱정된다고 말했다.

잘 살았다, 그가 있어 더.

나는 내가 좋았고, 나는 그가 좋았다. 그럴 수 있도록 그가 도와주었다.

일하고 놀고 배우고 사랑하고 연대하기!

가끔은 집짓는 시간동안 건축주로서 잘못 걸었던 시간을 후회하기도 했더랬다;

잘 몰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시공자에 끄달린.

하지만 그런 시간조차 연민으로, 또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바라볼 수 있는 여유는

바로 이 풍요로웠던 열댓 날로 가능했다는 생각.

고맙다, 생이여! 고맙다, 벗이여!


서울 하루걸음.

품앗이 선생 하나 어르신 한 분께 소개하는.

고작 앎의 고리를 연결할 뿐이었지만

“하지만 ‘강추’하는 거라면 먹고 들어가는 거지.”

라는 말씀처럼 새로 시작하는 일에 도움이 되면 좋으련.

한치 시간이 아쉬운 날들이어도 어떻게든 시간을 빼서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4800 2017.12.24.해날. 비 옥영경 2018-01-23 909
4799 2017.12.23.흙날. 맑음 / 다녀와서도 이 일이 중심이 아니도록! 옥영경 2018-01-17 866
4798 2017.12.22.쇠날. 맑음 / 새집에 들어온 선물이 그것만 있을까만 옥영경 2018-01-17 874
4797 2017.12.2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8-01-17 771
» 2017.12.20.물날. 푹하기도 하지 /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꼽으라면 옥영경 2018-01-17 835
4795 2017.12.19.불날. 아침 눈, 그리고 볕 옥영경 2018-01-17 713
4794 2017.12.18.달날. 잠깐 눈발, 오랜 바람 / 아름다운 시절 옥영경 2018-01-17 722
4793 2017.12.17.해날. 맵긴 해도 맑은 / 연어의 날이 생각났는데 옥영경 2018-01-17 768
4792 2017.12.16.흙날. 가끔 흐림 / why not! 옥영경 2018-01-15 664
4791 2017.12.15.쇠날. 가끔 흐림 옥영경 2018-01-15 642
4790 2017.12.14.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8-01-15 632
4789 2017.12.13.물날. 맑음 옥영경 2018-01-15 667
4788 2017.12.12.불날. 맑음 / 장순이 가다 옥영경 2018-01-15 672
4787 2017.12.11.달날. 눈 / 골짝을 채우는 별스런 울음 옥영경 2018-01-15 649
4786 2017.12.10.해날. 잠시 다녀간 우박 옥영경 2018-01-15 686
4785 2017.12. 9.흙날. 흐리고 눈발 / 感銘(감명)이라 옥영경 2018-01-15 644
4784 2017.12. 8.쇠날. 맑음 옥영경 2018-01-15 639
4783 2017학년도 바깥수업 예술명상 갈무리글 옥영경 2018-01-11 715
4782 2017.12. 7.나무날. 눈 내리는 아침 / 예술명상 마지막 수업 옥영경 2018-01-11 671
4781 2017.12. 6.물날. 아침 눈 옥영경 2018-01-11 66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