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보자... 28일 밤이다. 1월1일 인천발 비행기표가 손에 있다.
사흘, 남은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달골 집짓는 현장 정리하고, 학교 안팎 돌아보고, 교무실에서 널린 서류 점검,
그리고 짐 싸서 나간다. 순조로울 때 예상되는 차례이다.
하나라도 어긋지면? 그래도 비행기는 타겠지. 암, 타야지.
거기선 또 거기에서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최대한 드나드는 샘들이 힘들지 않게,
엉킨 일로 바다 건너 불려 들어오지도 않게,
자꾸 뒤가 돌아봐져 앞에 놓인 일이 비틀거리지도 않게 하고 가기!
온몸에 한기가 든다.
힘들었다, 애써 말 돌리지 않겠다.
그런데, 그것만이라면 그게 다 무슨 짓이었겠는가.
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로 꼽기에 주저치 않는, 사랑하는 벗들과 함께한 날들도 거기 있었으니.
비로소 한숨 돌린다.
그런데, 그렇다고 일이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민수샘도 1월 2일 일을 시작하기 전 평일이 남았을 때 일 좀 챙긴다고
공구 실어 서둘러 아침에 산마을을 떠났고,
그 자리로 두어 시간 현장 바닥에 재벌칠을 하기 위해
페인트 일을 도왔던 순배샘과 익선샘 들어왔다.
민수샘들과 자정 가깝게까지 일을 갈무리하고
사람들을 들여보낸 뒤 새벽 2시까지 청소를 하고 갔건만
풀풀 날아올랐던 먼지가 창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다시 앉았던,
하여 샘들 세워두고 부랴부랴 걸레질,
“옥샘, 이제 그만하세요.” 뒤에서 부를 때까지 정신없이.
무산샘은 공사에 쓰이다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던 물건들을
컨테이너 창고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민수샘이랑 우리가 너닷새 동안 하고 말리라던 목공 작업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 남은
세면볼 하부장도 손을 댔다.
어차피 바닥이 마를 동안은 천하에 장사라도 안에서는 일 못한다.
덕분에 낮밥을 먹고 바깥 동선,
면소재지 가까운 곳부터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농협에서 사람을 찾을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 필요한 서류 넣어두고,
면사무소로 가서 역시 부재하는 동안 찾을 일 있을 때를 위해 두어 가지 장치,
다음은 황간으로 넘어가 광평농장으로 향한다.
마침 물꼬에 들어왔던 가리비를 절반 나눠 들고 가니
손두부와 뻥튀기로 변하여 차에 실린다; 학교 한 번씩 들여다봐 주시어요.
인근 도시로 넘어가
세면대 하부장을 마저 만드는 중이니 다리 넷이 필요해 사고
건재상으로 넘어가 달골에 키 낮은 대문에 쓰일 자물쇠며 챙기고
시장으로 가 유압유며 엔진톱 부속을 사고
인사해야 할 물꼬의 논두렁 한 분이시기도 한 어른 댁 들린다.
마침 돌려드려야 할 책도 있었으니.
가는 것보다 오는 게 많은 삶이라
보이차와 유기농식초가 실리고,
부랴부랴 물건 하나 건네받기로 한 집도 들렀다.
1년에 두어 번이나 갈까 하는 목욕탕까지,
이거야말로 완전 한국판이니까, 한국을 1년 떠나있는 단 말이지,
몸을 살필 짬이 아니 되니 이렇게라도 피로 한번 풀어주고,
그리고 물꼬에 들일 비상식량, 샘들이 드나들지만 학교아저씨가 혼자 계실 때 편히 쓰실,
장보는 것까지.
학교에 닿아 짐 부리니 또 자정이 예사이듯 한 날에 예외 아닌.
그리고,
아리샘 연규샘 휘령샘 정환샘 인교샘 선정샘 원석샘 ...
두루 미안하다.
한숨을 돌리지만,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연 있지만 여전히 전화 한 통은 고사하고 읽어낼 짬조차 어려운...
적어도 공항에서 출국 절차 밟으면서는 문자 한 줄 할 수 있겠지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