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9.쇠날. 흐림

조회 수 893 추천 수 0 2018.01.23 07:13:43


날이 풀렸다. 낮은 영상이었다. 하지만 흐려 쌀쌀했다.

가까운 곳에서 우박이라도 내리는가, 몇 발의 눈이 날렸기도 했다.

저녁이 되자

질퍽거리던 땅으로 꽝꽝 언 세계가 겹겹이 말려 웅크리고 들어간다...


학교 보일러실을 점검해두어야 한다,

물을 빼든 어떻게 하든 영하 20도로 연일 떨어질 때

학교아저씨 혼자 곤란하지 않도록.

드나드는 샘들이라고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하여.

그런 일들로 고단함 앞에들 당황치 않도록도.

이웃마을 기사님을 불렀다,

이것저것 공구를 실어 다니며 웬만한 수리를 다 하시는.

오래전 인사 나누었으나 물꼬 들어올 일에 번번이 걸음 엇갈리더라니

얼마 전엔 그예 다녀가셨더랬다.

차단기도 바꿔주고 문짝도 고쳐주고 콘센트도 갈아주고 이러저러.

나 없는 이 살림을 돌봐 주십사, 먼 길 가는(맞네!) 집주인의 하직인사인 양도.

“돈이야 오시면 받으께요. 제가 살펴볼 테니 걱정마세요. 부동액도 넣어놓고, 날이 풀리면.”

오신 걸음에 달골에도 올라 하고 있던 작업들에 손도 보태고 가셨네.


달골은... 그렇다. 계속된다, 일, 집짓던.

그럴 줄 몰랐나. 적어도 16일은 시공자를 빼야했던 강력한 까닭이기도 했던.

적어도 얼마쯤의 정리의 날들, 혹은 일을 마무리할, 우리 손으로, 그럴 날이 있었어야.

그것도 마음 좋게, 편히, 건축주의 의도대로 움직일.

그래서 그나마 이만큼 했다, 할 수 있었다!

세면볼 하부장에 샌딩, 그리고 마감칠,

다리 달아 욕실에 들여 자리잡아주고,

놀고 있는 낡은 거울 하나 생각나 학교에서 챙겨와 욕실거울로 닦아 마감칠 해두고,

대문 달았네, 달골 들머리에.

상징이지, 뭐. 키 낮은 대문 넘어와도 되고 옆으로 뻥 뚫려 사람 두엇은 나란히 들어올.

굳이 경운기도 들어올라문 못 들어올 것 없는.


짓다 만 집 티를 낼 것까지야.

(물론, 끝나지 않은 현장이지만 굳이 쓰겠다면 못 쓸 것도 없도록 해두었지만!)

그러면 혹 함부로 대해질 수도 있는 거라,

마치 유리창 깨져 버려진 차가 쓰레기장으로 변하듯.

커튼을 달아야지. 바느질을 해야지.

하지만 엄두를 못 내는. 사서 할 것도 아니고. 하기야 살 짬인들 나는가.

검은 플라스틱 파이프를 잘라 낚실줄로 걸고

거기 춤명상에 쓰이는 천들을 가져다 걸고 집게를 물려둔다.

부엌 창문엔 한지를 걸고.


이제 계단의 종이박스를 떼어내야지.

하나씩 뜯다가, 다쳤던 손가락이 아직도 낫지 않아 일은 더디고,

그참,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무산샘은 떠나는 이가 아무쪼록 마음 가볍게 갈 수 있도록

남은 건축자재들을 컨테이너 창고에 정리 중이라고 서두르는데,

나야말로 몸을 빼야 갈 준비가 안 되겠냐고,

한순간 모든 움직임을 중단하다.

그 순간인 게다, 일을 그만해야 하는, 더 이상 가는 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그 발걸음.

끝!

무산샘한테 마저 부탁하고 자리를 턴다.


교무실로 달려가 올해 마지막으로 보내야할 서류 전송.

청소는 엄두도 못 냈다.

건축과정에서 못 다 지불한 몇 가지 송금도. 적어도 남들과 돈 계산은 끝난.

해가 넘어가는 때와 주말과 떠나는 걸음이 겹치니 더 바빠진.

하기야 그렇지 않았던들 부산스럽지 않았을라고.


이제 이틀을 남긴다. 1월 1일 인천발 바르셀로나행.

내일은 대해리를 나서려는데,

그런 내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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