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꽉꽉 채우는 일정이네.

오늘은 대해리를 나서려던.

그래야 하루쯤은 쉬기도 하고, 짐도 좀 여밀 짬을 낼.

그러나


이 밤도 대해리이다.

좀 전에 교무실을 나왔다.

청소 좀 했고, 겨우 눈에 걸리는 것만 좀 치운, 쌓인 건 그대로,

교무실이 생활공간으로도 쓰여 널려있거나 걸려있거나 쌓였던 옷가지들은 상자에 넣고,

싸야 할 짐 몇 가지 바닥에 모아놓고 나왔다.


아침에 눈을 떠 해건지기를 하고 먼저 빈 종이를 놓고 앉았다.

짧아도 이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시간을 최대한 쓰려면.

가서 할 일에 최소한 필요한 것들, 세상이 좋아 비싸지 않게도 필요한 것들을 구할 것이니,

꼭 여기서부터 챙겨가얄 것들 놓치지 않기,

연락을 전혀 안할 것도 아니지만 가기 전 꼭 일러두어야 할 일,

가기 전 절대적으로 챙겨놓고 갈 일들을 쓴다.


이제 무슨 중세도시 영주의 쇠락한 영토를 돌아보기라도 하는 양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꼬 공간을 돌아보아야 할 때.

하지만 아침뜨樂 물고기 모양 그 끝머리 입에까지 갈 짬이 없더라니.

열린 공간이니 풀을 잡는 게 제일 중요할 테고,

오가며 달골 관리를 맡기로 한 무산샘한테 순전히 떠넘긴다.

그는 또 무슨 업보라니. 벗을 잘못 만난 죄, 위로가 되기나 할 말일란지.

달골은 무산샘이, 학교는 학교아저씨가, 학교일정은 품앗이샘들이,

그밖에 논두렁이며 여러 어르신들 선배들이 짬짬이 학교를 돌아봐주기로.

내 계획은 그러한데 당사자들도 알고 있는 일... 맞겄지!

그리하여 위쪽은 생략하고 아침뜨樂 들머리부터.

며칠 전 현수막을 빨아두었더랬다.

바람에 끊어져 흙투성이인 걸 다시 쓸 수 있겠기 챙겨둔.

서현샘이 ‘연어의 날’ 즈음에 만들어 보냈던, 이전에는 금룡샘이 이태 보냈더랬네.

쇠파이프를 꽂아 걸었다. 단정한 정리 차원이었던 게지. 태풍을 지나갈 수는 있을지는 모를.

어제 단 달골 들머리 키 낮은 대문도 마저 손을 보았다.

다음은 새로 지은 건물, 번지판 붙여 사진을 찍은 뒤 담당공무원한테 보내주어야 했다.

공사로 남은 물건들 가운데 멀쩡한 몇 개 반품이며

마지막 남아있던, 빌려 쓰던 이동식 비계 두 짝 반납이며로 읍내 갈 일을

오늘 가는 길이었다면 그 걸음에 처리하려했지만,

무산샘이 몰아서 따로 다녀왔다.


하오엔 학교로 내려갔다.

학교아저씨는 일 년 물꼬 달력을 완성해놓았더랬다.

두어 달 전부터 이전 기록들을 살피고 기억을 살려 챙겨 주십사 부탁한 일.

번듯하게 자판 두들겨 출력해드렸음 보기 더 좋았을 걸,

그 짬이 안 되던 12월이더라.

겨우 확인만 한.

서너 개만 더하고 뺀.

곁에서 다가올 물꼬의 2018년을 챙겨준 손발이 어디 그뿐이랴.

냉장고를 열었다. 밑반찬 좀 챙기고, 김치통들 정리하고, 새 김치 꺼내놓고.

벌써 김장김치를 절반을 먹었다.

올해 얼마 담그지도 않았는 데다 두 달 달골에 집 하나 짓는 동안 사람 입이 얼마였댔나.

여러 날 비울 때면 해두는 몇 가지를 마저 해놓으면 좋으련...

대신 남도의 집안 어르신 한 분께

봄가을 한 차례 풍성히 밑반찬 좀 보내주시라 부탁하였네.


마을 몇 분께 전화 드리거나 문자 넣거나.

이장님, 저 없는 일 년 대해리를 부탁해요, 가끔 학교도 좀 들여다 봐주시구요, 건강하시어요.

전 이장님, 인사드리러 갈 짬은 정말 안나요, 건강하게 잘 계시어요, 가끔 학교도 좀 들여다 봐 주시구요.

할머니들, 마을회관에 밥 먹으러 갈 짬이 도저히 안나요, 먹은 걸로 할게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구요.

젊은 엄마들, 물꼬는 계속 되어요, 제가 물꼬를 잊은 건 아니구요, 멀리서 일하다 잘 돌아올게요.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갔다, 시간이. 앉았던 것도 아니다. 움직였다, 계속.

그런데도 또 자정에 가깝다. 이제 그만. 내일도 있다!


* 이건 시간이 지나 하는 기록.

소식들 보내왔으나 확인 잠깐 할 틈이 나지 않았던.

수일 지나서야 읽으니 이즈음의 일이라;

시인이 많아 좋고 시인이 많아 별로다.

모두가 시인이나, 그래도 시인은 또 따로 시인이 있다.

모두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지만 또한 화가가 있듯.

문학 하는 벗들이 있다.

여전히 신춘문예에 글을 보내는 벗들도.

12월이 시작되면 그들을 부쩍 생각는데,

올해는 궁금해라 할 틈 없이 12월이 다 갔다.

아, 이 산마을의 2017년 12월이 그랬구나...

그 속에서 우직한 후배 하나는, 드디어 선망의 출판사에서 시집을 냈다!

글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성실하게 ‘쓰는’ 작가가 되었다,

시인나부랭이가 아닌 시인이,

팔자 좋아 문학이나 하려는 게 아니라 삶을 문학으로 재건하는.

이십년도 더 전에 그가 나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하였는데,

이제 그로 나도 시를 쓰려한다, 고 말할 수 있음 좋겠다만...

고맙다, 시인이어서, 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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