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편안하다면 다행합니다. 저도 잘 있습니다.)


여기는 바르셀로나, 두 달이 흘렀습니다.

북극의 이상고온과 대조적으로 유럽을 강타한 북극발 한파로

예년에 없는 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곳입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2401698

그렇다고 지중해 연안이 얼음까지 얼지야 않지만

낮은 기온에 바람 불고 비 내리거나 흐린 날이 잦았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두터운 외투와 머플러와 모자, 그리고 장갑을 끼고들 다녔지요.


여러 날 병상에 있기도 했고,

오래 무기력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다 하면서도

한참을 책상 앞에 앉기가 쉽지 않다가 오늘은 당신 생각을 오래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귀해서 깊숙이 넣어두고 그만 잊혔던 물건처럼

내 건강함이 내가 사랑한, 사랑하는 이에게 힘일 것임을 상기했습니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전장의 이순신도 아니지만

내 부고(무슨 그런 과장까지!)를 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있어야겠습니다!

그것이 또한 내가 사랑하는 그대를 지키는 길이기도 할 겝니다.

멀리서 달려가 물꼬 일 돕지 못해 미안하다던 벗들에게 자주 전하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렇지요, 서로 잘 사는 것이 서로 돕는 것일 터!


한국에서 가져온 탁상달력, 오늘이 대보름이더군요.

곳곳에서 달집을 태웠겠습니다.

이곳에도 음력이야 아니지만 1월 17일경 성안토니오의 날이 있었습니다.

가축의 안녕을 기원하느라 달집을 태우듯 여러 날 쌓은 나무에 불을 붙입니다,

도시에서야 보기 어렵지만.

그날에 나눠주는 도우넛처럼 생긴 커다란 빵은

먹기도 하지만 가축우리에 걸어두고 액을 막는다더군요.


어딘가 머무르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 지역 문화권에 놓이게 되지요.

한동안 사순절 까르나발을 준비하고 여는 주민들로 흥겨웠습니다.

사순절이라면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고 기도한 예수의 삶과 고난과 부활을 생각하며

40일간 육식을 먹지 않고 근신하고 회개하는 전통.

그러니까 까르나발(까르네는 고기, 발레는 안녕)은 금욕과 절제의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고기를 먹는 것을 감사하는 ‘사육제(謝肉祭)’입니다.

갖은 분장을 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는데,

과거에는 악마가 놓임을 받은 거라고 마귀 분장을 했다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미국의 할로윈 의상들 같더군요.

이 지역 학교에서는

그간 유치원 아이들에서부터 부모들까지 여러 패들이 음악에 맞춰 율동을 준비해왔고,

드디어 2월 9일 쇠날, 좀 흐리긴 했으나 학교 운동장에서 경연을 펼쳤더랍니다.

도시 한가운데서도 지역민들을 엮어내는 그런 전통이

이주민에게도 좋은 만남의 장을 만들어주었지요.


물꼬의 남자들(장률의 <춘몽>에서 여주 한예리가 셋 벗에게 하던 표현처럼)이 셋이나 강릉에서 지낸 겨울, 무산샘과 민수샘과 장순샘,

정작 제 나라의 올림픽과 제 나라 사람들을 지구 이편에서 tv로 보았습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이태의 지리산 살림을 꾸려 다시 도시로 들어갔다는 유설샘 소식에서부터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돌아갔다는 휘령샘이며

제대한 민우샘 대신(?) 군대 간 현택샘,

아이들은 입학하거나 졸업하거나,

여여하다고들 했습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물꼬는 가마솥방 수도가 얼거나 흙집 수도가 얼거나 달골 수도계량기가 터지거나.

무산샘이며 샘들이 더러 들여다보았고,

논두렁 한 분이 학교아저씨를 위해 바닷것들을 실어 들어가 곡주를 하기도 했고,

류옥하다가 바르셀로나발 임무를 띠고 기락샘 차를 끌고 몇 차례 들어가기도 했고.

논두렁 분들은 여전히 콩을 심어 물꼬를 지켜주고 계셨습니다.(고맙습니다!)

손발 보태던 대학생 품앗이샘 하나는 직장을 다시 나가며 살림을 크게 보태주기도.(잊히지 않아 고맙습니다!)

오겠지요, 봄, 분명히, 거기도, 여기도.

그리고, 물꼬에는 어른의 학교도 열리겠지요...


슬슬 한국어로 된 책이 그립습니다.

교육서 하나와 우리말 이론 책 하나, 그리고 시집 네 권,

가져온 전부였지요.

뭐, 덕분에 영화 몇 편 챙겨보았습니다.

교사가 누구냐, <땐뽀걸즈>가 답했습니다.

어른이 도대체 누구더냐, <꿈의 제인>이 대답했습니다.

한국영화 2017년 걸작에 두 편을 넣기로 합니다.

좋은 교사, 나아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케 하고 그 길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이승문의 <땐뽀걸즈>.

기울어지는 조선 산업의 중심지 거제도로 취재를 갔다가

조선소 사람들이 아니라 그 지역의 한 여상 특활반 아이들을 6개월 동안 담으며

외려 한 도시의 쇠락을 더 잘 보여준(그게 주제이거나 중심소재라는 게 아니라),

다큐멘타리가 어떻게 설득력을 갖는지 보여주는 영화.

(다큐는 자칫 목적 지향적이어 정작 그 목적에 감동이 사라져버리기도 하는.

직접적 조선산업에 대한 기술보다

예전 붐볐던 가게가 이제 한산하거나 창업을 위해 공부하러 간 아버지들을 통해, 그것도 잠시 등장,

그곳을 더 잘 보여준.)

앞에 있는 아이 말고도 뒤에 있는 아이 말고도 그 사이에도 아이들이 존재하지요.

우리가 아이들이라고 말할 때 그 구성원을 다시 전체적으로 생각게 했고,

잘나거나 별나거나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아도,

한 교사를 통해 교사의 역할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녕 교사는 누구인가, 교사라면 가장 자주 물어야 할 질문 아닐지요.


조현훈의 <꿈의 제인>.

배우(구교환)가 캐릭터의 옷을 어떻게 입는지 전율토록 보여준,

소수자 문제를 안일하지 않게 다루는 전범을 보인,

어떤 게 세련된 연출인지를 말하기도 하는,

그리고 희망에 대해 전하는 영화.

데리고 사는 애들에게 왜 일 시키지 않느냐 물으니 제인이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벌써부터 일할 필요 없다고, 평생을 할 것이니.

타인을, 아이들을 어떻게 껴안는지 보여줍니다.

제인은 왜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걸까, 제인이 말했습니다.

- 시작부터 끝까지 주욱 불행한 삶. 행은 잠깐 볼까 말까. 그러니 혼자 살면 뭐하겠어, 같이 살아야지.

세 조각의 케잌 조각을 놓고 네 사람이 둘러앉았을 때 제인은 말합니다.

-못 먹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돼. 차라리 안 먹고 말지.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이야.

제인이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했지요.

- ... 외롭게 살겠죠, 계속 불행한 채로. 그래도 괜찮아요. 이렇게 행복한 날도 있으니까. 그럼 됐죠. 오래 오래 살아요, 불행한 얼굴로!

빚 좋은 개살구 같은 어설픈 희망이 아니라 냉정한, 그래서 더 희망적인 희망;

불행한 우리 삶에서 그래도 볕들 날을 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같이 살기! 

 

함께 보면 좋겠다고 말이 길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어른이, 좋은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당연히 이때의 사람, 어른, 교사는 이음동의어일.


그리고 바르셀로나...

교육프로젝트 수행(일정이 퍽 늦어졌습니다만)이 첫째 일입니다만,

아마도 이곳에서의 가장 큰 과제는

뜻밖에도(또한 당연한!) 심각한 인구절벽 앞에 한국의 대표적 미해결과제인 교육제도 해법을 찾는 것이 될 듯합니다.

그러니까 여전히, 늘 교육적 대안을 찾아왔던 물꼬 삶이 중심일 거라는!


서로 아름다운 시절이기로 하지요.


총총.


(*) 지난 1월 받은 메일 하나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1991년 봄학기 라틴어 강의를 잠시 듣던 한동안은

보내는 글월마다 그렇게 시작했더랬지요.

로마인들이 편지 서두에 썼던 문장이랍니다.(한동일의 <라틴어수업>)

이와이 슌지 러브레터’도 생각했네요, 설산을 향해 외치던 여주의 인사;

おげんきですか. わたしはげんきです.(잘 계신가요, 저는 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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