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를 한 것도 아니니 가져온 책이 몇 이상 될 리도 없고,

(저가항공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 수하물 중량은 중요하다)

허니 자연스레 다른 언어로, 그래봐야 겨우 영어 정도, 책을 볼 때가 있다.

하지만 내게 영어실력이란 남들 열심히 할 때 공부 안했다는 증거 정도,

그래도 한국인에게나 내 영어가 모자라지

외국인으로 남의 나라 다니는 데는 쓸 만하기 때문에(사람들이 친절하니까)

줄기차게 영어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껴나 있어서도 여전히 영어공부는 더 안 했다.

그러니 원서를 읽는다고 말하지만 두툼하거나 행간이 좁은 책은 아닌

한 페이지에 글 몇 자 없는 활자 굵은 아이들 책 정도이다.

아니면 겨우 겨우 안내 책자를 보는(봐야 한다에 가까운) 정도.

모르는 낱말이 더 많은 안내지.

오늘은 퍽 수다스럽다. 전투적이란 이야기다.

글을 좀 써야 한다, 쓸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You have found the magic in things you encounter on earth every day.

There are many other forms of everyday magic.

You never have to look far to find it.

You only have to live your life to the fullest."

“... 이 지상에서 날마다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에서 마법을 찾았다.

일상의 마법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것을 찾으러 굳이 멀리 갈 것까지 없다.

우리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면 그게 바로 마법!”

평범한 말이다.

하기야 우리가 하는 말들이 다 그 평범한 말이다.

진리도 평범한 말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우리를 서늘하게 한다.

어제 훑어보던 동화 하나의 문장이 그러했다.

아마도 동화 속에서 발견해서 강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 말이 글자가 많다고 꼭 훌륭한 책이더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시가 어떻게 대접 받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물꼬에서의 나날을 생각했다.

우리 집 아이가 언젠가 그런 말을 했다.

“이제 물꼬 일 그만하시면 좋겠어요, 어머니 너무 고생하시니까...”

대략 산골살이는 넘들 보기는 무공해 산천에서 여유롭게 누리는 삶이고

가족이 보기에는 애처로운 삶이기 쉬우니까.

그런데 아이는 바로 이어 고쳐 말했다.

“하기야 어머니 말씀이 힘이 있는 건 물꼬를 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산다’는 건 중요하다.

물꼬에서 살아가고자 한 방향대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했고,

그건 결국 나날을 살아가는 힘으로 작용했다.

(80년대의 깃발 따위 내려놓자던 말은

여전히 펄럭이는 깃발 때문에 강조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몇 달 떠나와 있으면서 석 달을 넘게 병상에서 씨름한 까닭 가운데는

‘사람이 이렇게나 “편리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거 아니었나 싶다.

물꼬에서는 자고 입고 먹는 일상적인 삶 자체가 퍽 거치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것이 취향이든 가치이든 허영이든 뭐든,

바로 그것을 견지하고 사는가 하는 점,

먼 어느 곳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자신이 선 곳에서.

우리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물꼬는... 여전히 대해리에 있다.

무열샘이 달골을 들여다보고, 장순샘이 학교아저씨 계신 학교를 둘러보고,

목수 민수샘이 현장과 현장 사이를 건너갈 오뉴월에 들러 손을 좀 본다 했고,

이웃마을 김기사(꼭 보일러만도 아닌)님이 필요할 때마다 좇아가고 있다.

공부의 양이 많다는 의대를 다니면서도

류옥하다 역시 물꼬 보급품차로 바뀐 기락샘 차를 끌고 학교아저씨를 돕는다. 

아이들이 간간이 소식을 나누고, 어른들도 이러저러 안부를 전해온다.

어른의 학교가 이어질 것이고,

몇은 옥샘이 계신 곳이 물꼬예요, 하며 바르셀나행을 준비 중에 있다고도 했다.

비행기표를 산 가족도 두 가정이 있고, 넷의 젊은 친구들도 있다.


엊그제 23일은 까딸루냐 ‘산 조르디(Sant Jordi; 성 게오르기우스)의 날’이었다.

까딸루냐 수호성인의 하나.

먼 옛적 무시무시한 용에게 양과 여자를 재물로 바치던 왕국에서 공주마저 제비 뽑힌 순간,

기사 조르디(까딸란 발음)가 나타나 공주를 구한다, 이야기가 될라고.

흘러내린 용의 피는 장미로 변하여 그걸 꺾어 기사는 청혼을 한다, 이야기가 될라고.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다, 역시 이야기가 될라고.

거리마다 장미를 팔고 있었다.

꽃을 사들고 친구나 이웃을 방문하거나 만나는 날.

주청사 앞에는 산 조르디 예배당이 있는데,

17세기 미사 드리러 가는 여자들에게 장미를 선물했던 게 그 뿌리라 했다.

그보다 2세기 전, 그러니까 이미 15세기부터 바르셀로나 장미축제도 있어왔다.

그날은 가우디의 ‘까사바Em요’도 장미꽃으로 덮여있었다.

조르디의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집이라고 하니까.


장미(물론 더러 다른 꽃들도 있다) 옆에는 책 좌판도 있었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같은 날 사망했다. 1616년 4월 23일.

1995년부터 국제연합이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의 배경이 된.

1929년 바르셀로나 세계박람회 때 서점들이 거리판매로 큰 이득을 얻은 이후로

스페인 책의 날이 23일로 바뀌었고,

까딸루냐는 그 이듬해부터 이 날을 책의 날로 정했다 한다.

그리하여 이날 흔히 여자는 장미를 받고 남자는 책을 받았더라는데,

아이들도 책과 사탕 혹은 파이를 받기도 하고

이웃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챙기게 되었단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밥 한 끼 먹는 날.

한주동안 비웠던 바르셀로나는 잎사귀가 무성하리만치 자라 있었고,

화창하진 못해도 비는 없어 책과 꽃들이 무사했고, 

길거리 카페도 거리도 놀이터도 사람들이 밤이 내리도록 빠지지 않았다.


멀리 있으면 볼에 닿는 바람에도 낯익음을 찾게 된다.

길가 버려 뒹구는 작은 끈 하나조차

헨델과 그레텔을 집으로 데려다주던 실처럼 반가움을 부르기도 한다.

아무렴 영상임에야...

얼마 전 극장에서 내린(아직 걸린?) 한국영화 한 편을 보았다.

20여 년 전에도 그런 말들을 했다만

한국을 떠나있으면 외려 드라마고 영화고 뉴스고 볼 기회가 더 많다고들 했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뉴스를 들으니... 인터넷, 정말 무섭다.

예전에는 한인타운에 한국 영상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주는 가게가 있었는데.

하기야 sns를 하지 않는데도 두어 달 전엔 탄자니아 사는 선배랑 연락도 닿던 걸.


일본소설, 영화를 원작으로 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장훈, 2018).

하던 일이 진척이 없어 머리만 싸매다가 튼 영화.

산야란 게 비슷비슷하다지만 그래도 낯이 익었다.

영상을 두어 번 돌려보고는 촬영지를 찾아봤다.

충북도와 영동군이 제작비 일부를 지원했다고.

영동이 영화 배경의 3분의 1.

집은 상촌면 궁촌저수지께 어디,

그리고 대해리 헐목(물꼬 아이들이 민주지산 갈 때 버스 타는 곳) 어디쯤의 계곡과

물한계곡 쪽으로 더 올라간 핏들 못가 계곡 건너 언덕.

영상을 몇 부분 다시 돌려보았다... 

(* 아, 그러고 보니 다니엘 헤니 주연 <마이 파더>의 보육원 장면을 물꼬에서 찍었던 적이 있었네.)

 

여기서 수영강사로 나오는 조연 이준혁은

<애니멀 타운>(전규환, 2011)에서 소아성범죄자로 나왔더랬다.

<무게>의 그 감독.

무게는 무게로 너무 무거웠는데,

애니멀타운은 맑은 물에 가라앉는 무게 같은 거였다. 하지만 흐르지는 않는 물.

도시에 멧돼지 출현으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나는.

(이렇게 말하지만 멧돼지는 처음-그것도 뉴스 속에-과 끝만 나올 뿐이다.

그런데도 멧돼지, 그러니까 동물에 대한, 그런데 바로 사람, 바로 우리 이야기이다.)

없는 사람들끼리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 앞에 그만 사는 일이 암담해져온다.

산 게 사는 게 아니고 죽은 게 죽은 게 아닌 반전 또한

느닷없는 화면처럼 사람을 오래 아프게 한다.

달 표면의 황량한 풍경 같던 영화.


거기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아이가 나온다.

바로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병에 무방비이고 범죄에 무방비이고 안전에 무방비인.

가난하다는 것은 아이들의 안전망 역시 허술하기 쉽다는 말과 얼마든지 동일하다.

용서받을 수 없는 가해자도 궁지에 몰린 그 삶을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일이 왜 이리 멀고 긴가, 기막히고 안쓰럽고 허망해지고 만다.

개인의 도덕과 양심에 기대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는 그리 믿을 게 못 된다.

사람도 믿을 존재가 아니다.

일찍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그것을 기록했던 프리모 레비의 글(<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너무 아파 장을 넘기지 못했던 부분은 정작 가해자의 만행이 아닌

유대인 안에서 일어난 폭력이었다. 자발적이든 아니든.

그건 소설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그러니까 은유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햇살 비추는 바깥세상을 모르는 지하세계에서

가둔 자를 향해서가 아니라 갇힌 이들끼리 물어뜯어야만 사는 인간사라니.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끝까지 떨림을 멈추지 못했던 것도

영화 <한공주>에서 영화가 끝나고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던 것도

그것이 영화가,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게 나이고, 너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에 관심을 두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것,

체험하고 인내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각을 집요하게 계속 품는 것이 자신을 살렸다고

아우슈비츠를 걸어 나온 레비는 기록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나는 범죄자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이탈리아와 외국의 파시즘이 범죄였고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진심으로 비판하고, 그들과 다른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만 나는 용서할 수 있다.” (270쪽, <이것이 인간인가>)


세월호도 그렇고 미투도 그렇고 우리가 만나는 일상의 무수한 폭력도 그렇고,

우리가 피해자였다고 해서 가해자가 아닌 게 아니었다.

그 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용서에 이를 때까지 잊지 않는 것이다,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월호 앞에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바로 이 까닭이다.

불과 며칠 전 세월호에 대해 한 성찰적 진보적 지식인조차 이제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걸 들으며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했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영화 같은’ 이 세상의 결론이 무기력과 좌절이 아니기를,

그래서 우리가 계속 살기를, 살아서 싸우기를,

그런 삶에 대한 생각을 한 오늘이었다.

그것은 게으름을 떨쳐내고 한 줄이라도 글을 쓰는 오늘이게도 했다.




옥영경

2018.06.25 22:45:34
*.153.137.204

산 조르디의 날.

... 까딸루냐어로 산 조르디라 부르는 이 성인의 이름은 스페인 다른 지역에서는 호르해, 독일어로는 게오르그, 영어로는 조지. 잉글랜드 대표팀의 빨간 십자가가 바로 성 조지의 십자가. 스페인에서는 아라곤 왕조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고, 이곳 바르셀로나에서도 특별하게 기린다. 전설에 따르면, 도시를 습격한 못된 용을 창으로 찔러죽이고 제물로 바쳐진 아리따운 공주를 구해낸 영웅. 그때 죽은 용의 피에서 장미꽃 한 송이가 피어났는데, 그걸 꺾어다가 공주한테 바쳤다고. 그래서 그가 죽은 4월 23일 사랑하는 여인에게 남자가 장미를 선물하는 고백의 날이 되었다고. 말하자면 바르셀로나의 밸런타인데이.

... 남자는 여자한테 장미(장미와 함께 자연의 순수함을 뜻하는 ‘에스삐가’라는 이삭을 끼워줌)를, 여자는 답례로 책을 선물하는 풍습. 책값이 훨씬 비싸다는 여성들의 항의가 빗발쳐 책은 서로 주고받는 거로 바뀌었다고. 하루동안 팔리는 책이 80만권, 장미는 600만송이라고. 사랑과 지식이 넘치는 최고의 봄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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