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쇠날 비

조회 수 1268 추천 수 0 2005.06.12 14:40:00

6월 10일 쇠날 비

비가 옵니다.
많이도 옵니다.

비가 내는 소리를 만나느라 어느 때보다 침묵하며
느리게 느리게 걸어다닙니다,
"우산이 모자라."
"이거 써. 나는 비옷 입을게."
저 허공에서 비가 그리는 그림을 봅니다.
가슴 한 켠도 물을 먹었습니다.
전깃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은
아이들 목소리 같습니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 얘기 같은,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입니다.
홈통에서 모였던 물이 콸콸대며 흐르고,
큰 마당 고인 물에 떨어진 빗방울은 퍼지고 또 퍼지고
우리들 마음으로 스미고 또 스밉니다.
원추리 잎에서 금낭화 잎에서 데굴거리는 빗방울들,
내리고 또 내리는 비는 감나무에 닿고 푸성귀들에 닿고 돌에 닿고..
밭가 배수로에서 돌돌거리며 가는 물길도 보고,
젖은 풀섶 가르고 물먹은 오디와 산딸기도 따먹습니다.
"와, 저 봐!"
채규가 우산을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거릴 때 만들어내는 물방울들의 춤은
잘 찍은 사진 한 장입니다.
들어와서는 비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썼지요.

비 오니 장구쳤지요.
춤동작에 굿거리를 올려봅니다.
아직 장구로 가락을 칠만치는 안돼도.
덩다기다꾸 덩다다다...
그리고 사이에 찾아드는 고요,
움직임과 움직임, 소리와 소리 사이에 찾아든 말없음의 세계가
우리 영혼을 넓혀줍니다.

영어하는 날이네요.
하다보니 낯도 익고 그러니 얼굴 발개질 것도 없지요.
롤 플레이를 했습니다, 역할을 정해서 하는 것 말입니다.
누가 발론티어로 나올 수 있겠냐 묻습니다.
어, 예린이부터 손을 번쩍 들어요.
이야, 하늘도 나오고 혜린이도 나옵니다.
시켜서 했지만 지용이도 나왔지요.
류옥하다는 이제 영어를 잊었지만
아직 그의 입에 남아있는 발음으로 우리들의 발음을 돕는답니다.

경훈샘이 없는 자리로 기락샘이 며칠 전 나간 자리로
방문자 유영숙님과 정은영님 나흘을 머물려 왔습니다.
공동체 식구를 꿈꾸지요.
밥알 김영규님 김준호님 한동희님 정미혜님도 들어오셨습니다.

비가 갔습니다,
자정을 넘기고 저들도 할 말 다했다고들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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