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라면

6월 22일이나 29일쯤 물꼬에서는 하지제(夏至祭)삼아

시 잔치를 하고 있거나 작년처럼 연어의 날;Homcoming Day 을 하고 있거나.

바르셀로나는 24일 오늘(이미 어제부터)이 하지축제인 ‘산 후안(Sant Joan) 축제’.

봄을 ‘산 조르안 축제’로 열었다면 여름을 여는.

산 후안의 상징은 불과 물과 허브.

불은 순결을, 물은 치유를, 허브는 치료를 상징한다 했습니다.

엊저녁부터 도시 곳곳 밤새 뻥뻥 폭죽이 터졌고(가장 짧은 밤 악귀를 몰아낸다고도 하는),

소동을 피해 도시 밖으로 여행을 간다고들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밤바다에서 수영도 했지요.

산 후안의 밤 동안 치유력(허브로)이 100 배 이상 향상된다는 주장도 들었습니다.


물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교육감님이 보내오신 사진에는

당신이 물꼬를 다녀가며 가마솥방 ‘드나나나’ 공책에 남긴 글이 있었습니다.

3월에 다녀가신 걸 두어 달 지나서야 알았군요.

무열샘이 들러 달골 아침뜨樂의 풀을 다 벴고,

장순샘과 학교아저씨는 밭과 학교를 서로 오가며 품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세 분이 인근 초등학교에서 나눠준 매트를 더 실어와 학교 뒤란에 깔기도 했다지요.

논두렁인 선배들이 다녀가고,

이러저러 어른들이 모여 ‘아이들의 학교’가 멈춰있는 동안 ‘어른의 학교’들을 이어갔습니다.


몇 달을 앓고 난 뒤 몸을 세우기 위해서 고군분투.

일정치 않은 짧은 시간의 잠이 건강을 해치는 주범인지 오래였습니다.

늦더라도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로 가고 이르더라도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기,

그걸 습으로 만드는 일을 요 얼마동안 제일 중요하게 삼았지요.

주에 한 차례 현지인 몇과 하는 명상모임만 겨우 나가다가

집에서도 날마다 거르지 않고 수행을 이어왔습니다.

한 달이 되니 팔이 올라가 옷을 좀 편히 갈아입게 되었지요,

여전히 끙끙 소리는 내지만.

간간이 오는 물꼬 식구들의 소식으로, 특히 아이들의 소식들,

그것은 또한 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만 할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5월 31일까지 초고를 마치겠다던 집필은 다시 한 달 가까이 시간이 더 필요했지요.

어제는 용기백배하다가 오늘은 좌절하는 날들의 반복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글도 책이 되고 베스트셀러도 되던데,

기죽을 것 없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논리라도 앞세워 자신을 설득하고,

흔들리다 중심을 잡아주는 자신을 고마워도, 기특해도 합니다.

밖에서 받는 위로도 있습니다.

머잖은 곳에 시집 전문서점이 있습니다,

물론 몇 블록 지나 정원도 있고 카페도 있는 아주 큰 서점도 있지만.

낭송모임이며 작은 모임들도 자주 열리지요.

간간이 읽지도 못하는 시집들 사이에 앉습니다.

걷는다고 말하기엔 몇 발 안 되는 작은 서점.

그렇게 시에 대한 향수를 대신하고는 하였더랍니다.


한국이 아니어도 어디서고 제 사는 곳에 사람이 늘 모였더랬습니다, 물꼬처럼.

여러 국적 사람들이 모여 주제를 가진 모임을 하든 파티든 잦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오래, 벌써 반년이 흘렀군요, 그 사이 이 집에서 작은 파티라도 한 것은

얼마 전 겨우 한 차례에 불과했습니다.

제 변화일 수도 있겠지요, 나이 때문이거나 건강 때문이거나 생각이 달라졌거나.

그래도, 이곳에서도 교육관련 움직임들에 조금씩 발을 담급니다.

건강 문제로 가지고 왔던 프로젝트 일이 어그러진 대신 또 다른 일들이 이어집니다.

며칠 전엔 사립 어린이집에서 하는 음악교실을 참관했습니다.

대안사회움직임이 활발한 그라시아 지구에서

예술활동모임이며 생태운동하는 이들과 교류도 있습니다.

여기는, 밖에서 들어온 이들이 스페인 교육에 흡입되기보다

각국 나라의 사람들이 제 나라 교육을 유지하려 한다는데,

독일어린이집, 핀란드여름학교, 그리고 공립어린이집을 참여하는 일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5월에는 물꼬의 분교처럼 두 사람의 한국 손님을 열흘 동안 치렀습니다.

물꼬의 큰살림에 견주면 일도 아니었고,

하지만 물꼬의 너른 공간에 견주면 솔찮이 답답하기도 했던.

문어(뽈보)요리가 유명한 곳이라고 문어를 삶아도 보았네요.

뜨거운 물에 문어를 넣었다 빼기를 세 차례 한 뒤 다시 넣어 45분을 삶고,

꺼내기 10분 전 두툼하게 썬 감자를 같이 삶아냈습니다.

1.5cm 정도로 퉁퉁퉁 잘라 올리브오일에 스페인 고춧가루를 뿌리면 끝.

얼마 전부터는 식구가 단촐하니 하루 한 끼만 식사준비를 합니다.

몸을 돌보라 가사노동을 덜하게 하려는 식구의 배려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했고,

일을 하는 흐름을 깨지 않으려는 배려이기도 한.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커집니다. 한국에서 그 큰살림의 삼시 세 때는 어떻게 했던 겐지...

어떤 낮엔 우리 집 앞마당이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나가

한국인들을 구경합니다. 퍽 많습니다.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저녁을 먹는 뒤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의 연못을 돌고 오는 게 일과이기도 합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밤에 더 성스럽습니다.


같이 사는 식구의 머리도 깎았습니다.

“빗도 없어?”

그러게요. 곱슬머리에다 파머를 한 적도 있어 굳이 빗까지 챙겨오지 않아도 되었지요.

잡화점에서 사려면 또 살 것이나 작은 거라도 필요치 않으면 안 사기로 사는 살림이라

욕조 의자를 놓고 앉으라 한 뒤, 플라스틱 포크를 빗으로, 빨래집게를 머리집게로,

그리고 문구용 작은 가위로 이발을 해주었습니다.

그리 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랬더라도 괜찮지요, 머리는 자라니까.


6월 14일부터는 러시아 월드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집 식구들의 안식년과 연구년과 프로젝트 일이 바르셀로나로 결정된 것은

여기 캄프 누(FC 바르셀로나;바르샤 홈 구장)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좀 있었다면 저가항공으로 러시아도 넘어가기 좋은 곳.

대신 올해 전 세계의 모든 축구경기를 볼 수 있는 채널권(인터넷)을 구입한 바

월드컵 64경기는 하나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답니다!

승부조작 때문에 동시간대에 하는 조별 리그 3라운드 여덟 경기는

하이라이트를 볼거나 중간에 채널을 돌려가며 스코어를 확인할 테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주장완장을 차고 뛰는 리오넬 메시를 보는 일은 속상했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축구(얄팍한 기교 없이 오직 전진하는)를 아는 사람은 다 알지요.

그에게 모자란 게 딱 하나 있는데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 ㅎㅎ.

세기의 천재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메시에게 남은 트로피라면 월드컵 우승컵 하나.

열다섯 살이던가 FC 바르샤의 유소년 축구단으로 건너왔으니 조국을 떠난 지 오래.

한 때는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아르헨티나였으나

축협의 심각한 전횡(아시아에도 그런 한 나라 있다지요)으로 무너지고 있다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원정 평가전에서

대표단의 교통비와 숙박비도, 위약금을 물었던 것도 메시의 개인주머니였다던가요.

“되지도 않는 거 빨리 끝내고(일찍 탈락하고), 푹 쉬고 다음 시즌 잘 뛰었으면 좋겠네.”

팬의 한 사람으로는 그런데,

그는 간절히 조국의 가슴에 월드컵 우승컵을 안기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게 그렇게 다른 방식이기도 한.

그의 소망이 이뤄지도록 비는 게 팬심일 테지요,

사랑하는 이에게 우리들이 하는 그 마음처럼.


10월 쯤 몬드라곤(젊은 날 가슴을 뜨겁게 했던 스페인 북부의 공동체마을)을 다녀올 수도 있을 듯합니다.

공동체로서의 관심보다 그곳의 교육이 궁금합니다.

지원을 신청해 놓았는데, 기대하는 대로 되어야 가능할 일이겠습니다만.

8월에 물꼬 식구 몇 바르셀로나에 다녀갈 계획이고,

가을에는 한국에서 오는 벗과 산티아고 순례길 얼마쯤과 피레네산맥을 걸을 생각도 합니다.

사람들이 하도 가서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가,

넘들 다 간다고 안 간다 하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이겠습니다.

이리도 저리도 매일 게 아닌.

그런데, 준비 없이 바삐 온 살림, 등산준비도 그러했네요.

그렇다고 살 것도, 살 형편도 아닌.

한국에서 오는 편에 부탁을 하는 것도 번거롭고.

그러다 가까이에서 등산화며 장비들을 가진 이들을 찾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문화예술기획을, 프랑스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스페인에 정착해 퍼포먼스를 하는 한국인을 만나게 됩니다.

필요한 장비도 장비려니와, 한국어로 된 책의 아쉬움이 전혀 뜻밖의 곳에서 풀린 거지요.


들고 온 그의 한국어 책 몇 가운데는 소설도 하나 딸려왔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다 해도 죽을힘은 남으며(If all else fall, myself have power to die; <로미오와 줄리엣> 3막 5장),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인생은 조금 더 계속되리라는,

그리하여 둘만의 행복을 찾아 ‘커다랗고 하얗고 넓은 침대로’(브레이트의 <한밤의 북소리>) 가는 이야기.

‘1987년부터 분신정국이 펼쳐졌고 1991년까지, 그동안 한국사회를 완강하게 지탱해온 뭔가에 불길이 지펴지면서 그 불꽃이 화려하게 타올랐다가 장엄한 모습 그대로 몰락해갔’습니다.

이후 ‘황지우의 시 <이준태의 근황>에서 쓴 ’그리고 대뇌와 성기 사이’에서처럼 대뇌끼리, 성기끼리 피곤하게 싸우던 시절이 끝나고 대뇌와 성기 사이에서 저마다 한 시대의 몰락을 주관화하고 내면화시키면서 개인들이 등장’합니다.

그해 강경대의 죽음에 격노한 거리에서

저도 최루탄 사이를 사민청(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 사람들과 걷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좀 무시무시하지만 민주주의를 열망한 그저 작은 대중조직단체에 불과했던,

탄압정국이 대중조직단체들을 거대한 비밀결사인 양 만들었을 뿐이었던.

그해 4월이 뚜렷합니다. 초하루, 눈이 내렸습니다.

고 박종철의 생일을 기억하는 그의 동기 선배들 넷과 마석을 다녀왔던 날이었습니다.

한 시대가 그렇게 지나갔더랬지요.

그리고 멸망하지 않은 1999년이 가고, 올 것 같지 않던 2000년이 와버렸습니다.

그러고도 18년이 흘러 2018년, 저는 바르셀로나에 있군요...

멀리서 보는 한국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여혐 남혐입니다!

페미니즘계의 1세대 선배들이 왜 현 사태에 대해 침묵하는지 답답합니다.

진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라고들도 하지만

책임 있는, 그리고 균형 잡힌 발언들이 있어야겠습니다.


같은 책에는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인간수명이 70이라 할 때 3,000번 울고 540,000번 웃는답니다.

180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는.

‘하루에 사십이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한 이 지구위에서도

우리가 살아 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라는.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삶이란 모두 이 두 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그것은 또한 마르께스의 말이었습니다, 작가가 알고 썼는지 모르고 썼는지야 모를 일이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엄지로만 타이핑을 한 마르께스는 자서전 첫머리에 이렇게 썼습니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민음사)]

‘삶에서 일어난 일들은 지난 뒤에야 그 의미를 알고,

의미를 알고 난 뒤에는 돌이키는 건 이미 늦다’는 문장도 같은 소설에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살아가는 것밖에 없게 되는 거지요.

하여 이제 자지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입니다, 진부한 말입니다만.


내일은 류옥하다 선수의 바르셀로나 입성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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