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떤 부름'

조회 수 2684 추천 수 0 2018.07.18 04:55:08


어떤 부름



늙은 어머니가

마루에 서서

밥 먹자, 하신다

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다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

원뢰(遠雷) 같은 부름

나는 기도를 올렸다,

모든 부름을 잃고 잊어도

이 하나는 저녁에 남겨달라고

옛 성 같은 어머니가

내딛는 소리로

밥 먹자, 하신다


(<먼 곳>(문태준/창비/2012) 가운데서)



밥 먹자 건네는 어머니의 음성이

오래되었으나 견고한, 먼 우레와도 같은 성주의 부름 같다.

성주를 위해 대원정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부름,

결코 거역할 수 없고, 우리를 존재케 하는 오직 복종해야 하는,

그러나 한없는 사랑으로 나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말 이의 부름.

나는 작고 연약한 푸른 벌레 한 마리,

어머니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로 다 기어가서 닿고 싶은,

어머니 말씀의 온기의 그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온 힘 다해서 이르고픈 밥상으로 가는.

나도 오늘 그 밥상 앞에 앉고 싶다.

울 엄마의 김 오르는 밥 한 술 뜨면 

가뿐하게 병상을 차고 저 햇살 아래로 걸어나갈 수 있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물꼬를 다녀간 박상규님의 10일간의 기록 [5] 박상규 2003-12-23 127359
5658 154번째 계자를 마치고 온 아들을 보며.... [3] 느티나무 2013-01-11 2924
5657 2기 방학캠프 참가자 추가모집 및 1기, 피스로드 마감 안내 image 피스 2011-12-01 2916
5656 잘 도착했습니다 ! [1] 채성 2021-12-29 2910
5655 다들 잘 지내시지요, 바르셀로나 다녀왔습니다~^^ [1] 휘령 2018-08-05 2905
5654 다시 제자리로 [2] 휘령 2022-06-27 2901
5653 경부선하행시간표가바뀌었는데.. [1] 석경이 2008-07-15 2900
5652 아 저도 쫌 늦엇나요!? (146계자!) [5] 경초르 2011-08-15 2899
5651 지금은 계자 준비중 [1] 연규 2016-08-04 2898
5650 2011 피스로드 2nd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imagemovie 피스 2011-10-22 2889
5649 소울이네 안부 전합니다^^ [5] 소울맘 2018-08-04 2887
5648 잘 도착했습니다:) [2] 태희 2022-06-27 2877
5647 잘 도착했습니다. [1] 진주 2020-06-28 2858
5646 [답글] 어엇~? 이제 되는건가여? 테스트 2006-10-26 2849
5645 자주 오네요 ㅎㅎ 귀여운 댕댕이들 보고가요 image [1] 제주감귤 2021-02-18 2838
5644 [12.16] 혼례 소식: 화목샘과 세련샘 [1] 물꼬 2023-11-07 2830
5643 잘 도착했습니다! [1] 수연 2020-08-15 2816
5642 사유의 바다를 잠식한 좋아요 버튼_폴 칼라니시의 [숨결이 바람될 때] 에세이 imagefile [1] 류옥하다 2018-06-06 2816
5641 잘 도착했습니다!ㅎㅎ [1] 휘령 2019-05-26 2814
5640 잘 도착했습니다! [2] 진주 2022-06-26 2812
5639 무사히 잘 도착했습니다. [1] 임채성 2023-01-15 281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