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여름 풀을 주욱샘이 깎았다는 늦은 소식이 닿았다.

은희샘과 두 아들 정엽과 인엽, 온 가족이 함께 와 모둠방에서 묵어갔다는.

달골은 무산샘이 꼭대기 아침뜨樂부터 창고동 들머리까지

이천여 평을 넘게 깎았더라지.


돌아갈 날이 가까워온다.

다시 산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끔 물음표를 달았다.

그때 앞에 선 벽이란 첫째는 추위, 둘째는 노동 강도, 셋째는 외로움 때문이었을 수도.

무엇보다 병상의 날들이 사람을 위축시켰다.

찾아오는 이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으려나,

도무지 기죽을 줄 모르고 달겨드는 산마을 풀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서부터

낡고 너른 산골 삶이 더럭 더럭 겁이 났다.

와서는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가 문제를 일으켰고,

곧 왼쪽어깨와 팔의 통증이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곳 의료체계는 좋으나 외국인에게 편하지도 않거니와 기다림이 길다.

그리고 나는 병의 원인을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한국에서도 진찰은 양방을 원해도 치료는 한방을 선호했다.

여기서는 침구사 1회 38유로. 의료행위도 아니거니와 그래서 또 보험도 안 되는.

그걸 주에 세 차례 맞는다고 셈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고려해보았으나

예정대로 되지는 않았어도 여기서 해야 할 남은 일들이 있었다.

결국 12월 31일 예정한 비행기를 그대로 타기로 했다.

내 희망의 절대적 근거지는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물꼬가 있다!’, 잊혔던 듯 되짚자 대해리로 다시 가는 걸음이 적이 가벼워졌다.

대해리는 조금 더 늙어 있을 것이다.


동지들이 많을 땐 협업의 가치를 몰랐고,

혼자였을 땐 아직 젊어 협업상황을 만들지 않아도 무리가 없었다.

나이 먹으며 영민함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몸도 더디다.

역시 대안은 협업이다. 동지들이 그립다.

나는 좋았으나 너는 힘들었던, 그런 노동을 물꼬에서 말해오지 않았던가 싶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지점을 찾아 아름답게 같이 일하고 싶다.


통증이 심했던 일들을 겪은 시간을 덜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일종의 자신감 같은 것이었다.

(* 위 두 줄이 씌어진 맥락을 모르겠다.

곧 이어 쓰리라던 글을 한 달이 지나도록 방치해두었던 탓이다.

애써서 글을 이을 수도 있겠으나 그냥 두기로 한다.)


12월 출간을 예정하는 원고의 2차 교정을 보다가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단, 교정을 보다 삶을 두루 돌아보게 되네.

 삶은 경향성이다, 방향성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거짓말을 한다.

 그걸 네가 알아챌 때도 있고, 내가 모르게 하는 데 성공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큰 방향에서 나는 착하고 바르고 성실하고 솔직하려 애썼고,

 누구보다 선한 일에 동참해 왔다.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 꼭 잘 살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긍정적 면에서 열심히 살았다.

 누가 손가락질하더라도 나는 나를 이해하며, 나를 연민한다.

 궁극적으로 이건 내 삶을 밀고 가는 큰 추동력일 것이다.

 다른 축 하나는 물론 가족일 테고, 좋은 벗들과 이웃들일 테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거야말로 어떤 인생을 살려고 하는가에 대한 기준이다.

 하하. 비장허네, 무슨 묘비명도 아니고 유서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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