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온 바르셀로나에서 11월을 맞는군요.

10월 셋째 주 서머타임을 해제했으니 한국보다 8시간이 더딥니다.

섭씨 13도 안팎의 11월의 바르셀로나,

가을엔 비가 많은 이곳인가 보다 했는데 이상기온이라 합니다.

이번 주 역시 자주 흐리고 비 또한 흔했고,

맑은 날이라 하여도

거실까지 쑤욱 들어오던 해가 기울어 낮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10월 중순부터 히터를 켜기 시작했고,

침대에서는 뜨거운 물주머니를 안고 잡니다.

한국을 떠나 있으면 온돌이 제일 아쉽다 싶지요.


정작 스페인의 다른 도시는 기웃거리지도 못하고 가겠던 사정이더니

10월과 11월에 며칠씩 날을 좀 얻었습니다.

10월엔 스페인북부 바스크지방 세 주의 주도인

빌바오, 비토리아, 산 세바스티안을 다녀왔습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도 그곳에 있지요.

바스크는 넓진 않아도 스페인에서 1인당 가구소득이 가장 높은 부유한 지역답게

경제적 여유와 넉넉한 인심을 엿볼 수 있었고, 자연경관 또한 알려진 대로 빼어났습니다.

빌바오는 공업 침체 뒤 대안으로 건립한 구겐하임미술관을 중심으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고,

산티아고 까미노의 북부길이 산세바스티안에서 시작해 이곳을 지나고 있어

조가비 표식을 따라 성당에서부터 도시가 기대고 선 언덕을 빙 둘러 걷기도 하였네요.

핀초바에서 점심에 연 동네파티에 어울린 건 큰 행운이었습니다.

곧 지역대회에 참가할 음식인 팥죽을 나누고

이 지역 사과로 만든 술 시드라에 몇 가지를 섞어 만든 칵테일을 놓고

너나없이 흥겨웠습니다.

역시 여행은 그곳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제일 큰 묘미다 싶었지요.

푸니쿨라를 타고 오른 언덕에서 만난 젊은 예술가와의 교류로 마음 더 풍요로웠던 빌바오.


해발 500미터의 언덕 12세기 중세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진 비토리아는,

이보다 더 좋은 정겹고 예쁘고 안락하고 고즈넉한 도시를

다시 보기 어렵겠다 할 정도였습니다.

때로 긴 세월에 걸쳐 사람살이가 밴 풍경 또한 자연자체가 주는 놀라운 풍광 못잖지요.

미술관 옆 도서관에 들어 책을 뒤적이며 지역을 내려다보며 쉬던 시간도

퍽 좋았다 꼽겠습니다.

알려진 곳들의 검증된 감동도 있겠지만

역시 지역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시선 혹은 동선으로 움직여보는 것도

여행을 퍽 다채롭게 돕지요.

어릴 적부터 적지 않은 나라들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벌써부터 난방을 돌리는 북쪽만 아니라면 살고 싶은,

몇 손가락에 꼽을 만치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거리를 돌아다닌 이틀 동안

세계 어느 끝자락을 가더라도 있다는 중국인은 물론

동양인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가까이 집이 있습니다.

주로 사그라다 역에서 메트로를 이용하기도 하고 산책을 나가는 곳이기도 하니

못해도 한 주 서너 차례는 대성당을 지나는데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날이 드물지요.

바르셀로나에 온 관광객들이 사그라다 대성당에는 꼭 들린다는데,

유난히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11월이 되었는데도,

평일에도 한국인 그룹(특히 청년들이 많은) 몇과 적지 않은 개별여행자들을 보았더랬습니다.

모든 한국인이 다 다녀가는 느낌이 들 정도이지요.

바르셀로나에 왜 그토록 한국인이 많은지,

또 그 가운데 유독 청년들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봉준호 감독이 상을 받았던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의

바로 그 산 세바스티안이 마지막 여정지였습니다.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을 주장한 내용을 새긴 해변 모래사장 위에서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독립의 의지를 읽었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그대들에게 영국을 찬양한다면 그는 영국인일 것이다.

프러시아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면 프랑스인,

스페인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면 그는 스페인 사람'일 거라 했던가요.(스페인 역사학자 페르난도 디아스 플라하)

바스크인은 10만년 전부터 그곳에 터를 잡았고, 

7천년 전부터 고유어인 에우스케라어를 써왔다 합니다.

비스카야만의 진주라는 콘차 해변을 중심으로

몬테 이헬도 지역 신시가지와 몬테 우르구이 지역 구시가지를 온통 걸어다녔네요.

어디를 가도 실패할 확률이 없다거나 스페인 유명 요리사 중 바스크 출신이 많다는 소문대로

해산물을 비롯 역시 먹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바닷가에서 만난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와이어 예술가와 오랫동안 놀기도 하였네요.


11월 13일께 한 주는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코르도바-그라나다로 이어진 여정.

제게 여행은 자주 책을 장소로 읽는 일이고는 합니다.

세계의 이름난 정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던 35여 년이던가의 사랑 이야기인

에릭 오르세나의 <오래오래>를 오래 오래 읽었던 해가 있었습니다.

거기 등장한 세비야의 알카사르 궁전의 ‘소녀의 정원’을 이야기 하던

이 생에서 더는 만날 수 없는 깊이 그리운 벗을 떠올리며 걸었군요.

사람의 기억은 얼마나 질긴지요.


코르도바는 메스키타(모스크의 스페인어. 그러나 이 성당을 지칭하는 고유어이기도.) 본 개장 이전

아침 무료입장 시간을 챙겼습니다.

가난한 여행자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지요.

안으로 들어가 무수한 기둥 사이를 걸어보지 않으면 결코 진가를 알 수 없는,

8세기 이슬람이, 13세기 기독교가 점령, 이슬람 사원 바탕 위에 카톨릭 대성당이 합체된 건축물.

현재 코르도바에 유일하게 남은 이슬람 건축이자 세계 최대 이슬람 사원, 그리고 카톨릭 대성당. 

사원을 나와 종탑에 올라 보면 이슬람 지구다운 회색빛 건물이 채운 도시가 중앙아시아 어디쯤인가 싶기도 합니다.

세계 3대 성당으로 꼽히는 세비야 대성당의 오렌지 정원처럼 여기 역시 들머리에 오렌지 정원을 갖추고 있었더라지요.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쓴 포트로 광장의 여관은 오랫동안 문을 닫은 뒤

알달루시아 최대의 플라멩고 박물관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400년 전의 작가보다는 플라멩고가 사람들을 더 끄나 보더군요.


일정은 그라나다에서 보내는 이틀로 끝났습니다.

칙칙한 바르셀로나의 가을빛과 달리 한국의 찬란한 단풍구경을 그라나다에서 한.

스페인 여행서에도 꼭 들어가 있는 알람브라 궁전의 가을색.

바삐 잡은 일정이어 알람브라 궁전 티켓을 구하지 못했는데

호텔 직원이 나서고 지역주민이 나섰어도 소용이 없었지요.

울며 겨자먹기로 좀 비싼 영어가이드 동반 티켓이라도 구하려나 하니

그마저도 동이 나 성 둘레를 걸으며 접근하는 것으로 족하자 했는데,

매표소 한 직원이 

혹시 맞은편으로 가면 세계문화유산지정기념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이 남았을지 모른다는 귀뜸을!

귀한 선물이었다마다요.

티켓도 고마운데 그게 또 무료라니.

타레가는 어디에서 눈물을 흘리며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악상을 떠올렸을까요.


이튿날 궁전과 헤레랄리페 정원 사이 샛길을 따라

옛 이슬람 거주지 알바이신 지구로 넘어가는 길은 눈물나게 고왔습니다.

버스를 잘못 탄 바람에 받게 된, 이 또한 어디에 닿을 지 모르는 여행이 준 선물.

빛을 한껏 받고 있는 나사리에스 궁전(알람브라 궁전 내)의 한 아줄레주 벽 앞에 앉았을 적

활달한 젊은 외국인 여성 무리 가운데 한 여성이 다가와

굳이 제 손전화를 달래서 저를 찍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누구라도 모델이 되는 공간이었지요.

그리고 코르도바에서 왔음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여섯 살 사내아이를 포함한 일가족들과의 만남도 오래 기억될 듯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영어를 하는 엄마를 통해 의사소통을 한 그 아이에게

어쩌면 우리의 만남이 영어를 공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지요.

어떤 것으로든 우리 삶에 남는 지나간 시간들이겠습니다.


스페인까지 와서 한 해를 보내면서 바르셀로나 한번 떠나지 못하나 했더니...

(아, 산티아고 순례길도 걷고, 포르투갈로 넘어가기도, 로마를 다녀오기도 했군요.)

외도(外道)라고 해두지요.

한참을 앓았던 만큼 볕을 한껏 쬐고 다소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던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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