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한 어르신이 내게 토굴집을 지어주시겠다던 터가 있었다,

몸 하나 뉘일 개인 공간이 있어야 물꼬 같이 좋은 일도 오래한다고.

달골 아침뜨樂 아래쪽이었다.

하지만 몇 해 전 변수가 생겨 기약이 없어진 일.

2017년 가을, 그 터에 그예 새 공간을 준비했다.

그 시기 건축을 해야만 할 긴긴 이야기가 물론 또 있었지만 지금은 생략.

대개의 일들은 일어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기보다

여러 가지 일이 직조 되어 결정적이 된다.

그것을 터뜨리는 계기가 있을 뿐이다.

장기적으로 물꼬의 마을 생활을 접고 달골 시대를 준비하려면

공간이 필요한 것 또한 필연적이었다. 

물꼬스테이를 원하는 외국 친구들이 늘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헌정할 책 읽는 방일지도 모르고,

얼마쯤은 개인 작업실로, 그리고 집중수행 장소로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자연스레 제 역할을 지닐 터였다.

작업은 끝이 나지 않은 채 12월 31일이 오고야 말았고,

트렁크에 마구 짐을 던져 넣은 채 대해리를 떠나

1월 1일 인천발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올랐던 지난해였다.


새 공간은 그것을 꿈꾸던 10여 년 동안

처음에는 willing house라 불리다

구들을 놓아주겠다던 어르신으로부터 삼선실이라는 이름을 받았다가

지난 겨울 들머리엔 엄마집으로 이름을 달다가 새집이 되더니

드디어 ‘사이집’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새’를 풀어서 사이로 읽다가

사이·틈·여유라는 뜻으로, 그리고 관계라는 의미로까지 확장된 이름이다.


한해 한국을 비웠다 돌아온 2019년,

1월 말 사흘(1.28~30)과 2월 중순 열하루(2.11~21)를 ‘사이집’에 손을 댔다,

적어도 기거는 가능하도록.

전선배관함에 물이 차고,

보온재를 잔뜩 넣고도 수도 계랑기는 터져 다시 달렸고,

현관 열쇠도 고장 나 무산샘이 다시 달았다던 작년이었더란다.

(아, 나는 정말 고전적인 열쇠를 선호한다, 열쇠 집어넣어 돌리는.

그런 결정권을 제대로 갖지 못한, 행사하지 못한,

건축주의 성향과 뜻이 무참해졌던 집짓기였더라니!)

당장 통나무 기둥 셋을 세워 벽 쪽 누마루를 보강하는 일을 시작으로

사람이 비었던 햇발동 현관 내려앉던 데크도 손보았다.

마침 겨울이라 일을 쉬고 있던 민수샘이 두 차례나 들어와 같이 움직였다.

이때의 ‘같이’ 역시 동등한 작업량이라기보다 민수샘의 절대적인 손발이 있었다.

아침 느지막히 작업을 시작해 이른 저녁에 끝을 내는

노느작노느작 보낸 보름여였다, 그렇다고 고되지 않기야 했을까만.


제대로 하지 않은 일들이 이후 작업을 얼마나 어렵게 하였던지.

그 작업을 한 게 너이든 나이든.

무엇 하나 단숨에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하루 열두 번도 더 올라오는 마음을 눌러야 했다.

뭐 욕 나오더란 얘기다.

“이걸 왜 이리 한 거야?”

“뭐 이따위로 했어?”

물론 각자 작업자마다 자기 작업 꼴과 습과 방식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기본이 있지 않겠는지.

가령 부엌에서 나가는 환풍기를 염두에 두고 미리 구멍을 두었다면

몇 가지로 이어지는 벽체를 뚫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지 않았겠는지.

전기 배선도가 있다면 혹 전기선을 잘못 건드릴까 걱정하는 일이 없지 않겠는지.

천정의 전기레일을 제대로 상에 걸었다면

이어서 조명을 설치할 때 숱한 구멍을 뚫어 상을 찾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잖았겠는지.

싱크대 수전을 제대로 달았다면

한 방울씩 흐르는 물 때문에 다시 가구를 뒤집어 홈을 파야하는 수고를 덜지 않았겠는지.

애초 제대로 달았다면 수차례 무거운 문짝을 내려 다시 다는 힘을 줄이지 않았겠냐고!

2층(다락이다) 방문과 누마루로 이어지는 문, 계단 아래 세탁실과 창고,

그렇게 문마다 네 개의 문짝을 달고,

다락방은 유리 대신 렉상으로 벽체를 세우고,

걸레받이 루바 대신 송판을 잘라 두 장씩 겹쳐 대고,

침상 만들어 매트리스 놓고, 다락방 통창 실리콘 작업,

부엌과 거실 조명 설치, 욕실 세면대 작업만도 두 차례,

씽크대 물넘이 재작업, 인덕션 연결하고 부엌 후드 설치,

계단을 보호하기 위해 놓았던 종이상자를 붙인 테이프 자국 떼는 것에서부터 

표도 안 나는 구석들 다듬기.

더하여 먼지를 불어내고 닦기 수차례.


2월 어른의 학교가 있기 전 며칠 여유를 두고 접으려던 작업은

그예 나무날 아침까지 이어지고야 말았다.

(이전처럼 나무날 늦은밤까지 꽉꽉 채워 일하고

쇠날 아침부터 주말 일정을 준비하던, 그런 힘 좋은 시절은 지났다.

몸이 재바르지 못한지 오래이다.)

번번이 다른 일로 번지거나 그 곁의 일이 보이거나 하면서 늘어졌던.

그러고도 곳곳을 메울 실리콘 작업이며 여러 마감일은 여전히 남겨졌다.


달골 햇발동을 잠자리로 정하면서 열둘 규모로 생각했던 이번 어른의 학교는

사이집에 이불을 들이면서 스물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날이 풀리면 통창 유리(한 부분이 하자다)부터 작업했던 이가 보수를 해준다지.

남은 일들도 살면서 해나갈 테다.

비로소 건축주의 뜻대로 집이 마무리가 되어가는 게 크게 다행할 일이다!

이제야 물꼬 식이랄까.

(그런 거 말이다. 예컨대 시공자는 손전화도 놓을 수 있는 2단 화장지걸이를 원했다면

건축주는 단순한 외걸이 화장지걸이를 원했던.

시공자가 화려하고 기능 많은 샤워기를 원할 때 

건축주는 달랑 샤워기 하나 걸어 놓기만을 원한.

여기는 물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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