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

2월 모임을 공지하고 열둘의 자리를 마련했다.

한참을 쉬었던 물꼬 여정이라 빈자리가 적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두 차례나 마감을 알릴만큼 자리가 차버렸고,

그런 속에서도 몇 번을 간곡히 부탁한 이들을 위해 잠자리를 더 마련해

스물 규모로 넓힌 일정이었다.

태희샘과 수현샘은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서 맨 먼저 신청했으나 실습이 잡혀버린 다은샘,

임용 합격 소식을 전한 화목샘은 연수가 겹쳐 합류하지 못했지만

덕분에 근황을 서로 전할 수 있어 고맙고, 기뻤다.


2018학년도 마지막 일정이고,

개인적으로는 꼬박 한해를 넘게 쉬고 하는 물꼬 첫 일정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돌아와 쌓여있는 대부분의 일도 먼지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책을 출간하기로 한 두 출판사와 계약을 하러 대전역에 간 일을 빼면

두문불출 몸을 돌보는 일에 집중했다.

특히 ‘어른의 학교를 앞두고 몸만들기’로

딱 보름을 날마다 침 맞고 습식부황을 하고

팔을 덜 쓰거나 최대한 안 쓰기,

설거지조차 다른 이들이 하기도.

하지만 바쁘면 어느새 힘을 쓰는 팔이고 어깨였다.

그래도 최대한 잠을 확보하기, 낮에도 한번은 몸을 뉘기,

팔과 어깨를 덜 쓰되 움직여서 확장하기, 딱히 특정 음식이 아니라 잘 먹기.

너무 긴 세월 굳어진 적은 양의 잠을 늘리는 일은 고역에 가까웠다.

‘사이집’ 작업을 해날에는 멈추고 달날부터 며칠 천천히 준비하자던 일정이었지만

결국 나무날 아침까지 시간을 썼다.

덕분에 ‘사이집’도 당장 사람이 잘 수 있게는 되었다.

청소에 이불이며 몇 갖춰 놓으니 해가 졌던 나무날, 어제였다.


오후 내내 사흘 밥상 준비를 미리 좀 해두려던 계획은 청소에 덮였다,

예전처럼 몸이 재바르지 못하니 끼니마다 필요한 기본 재료들을 손질해 두리라던 것을.

에코가방을 선물로 든 새끼일꾼 성빈이가 먼저 등장했다.

“가방이 아니라 네가 선물이네. 엄마가 너 잘 쓰라고 일찍 보내셨구나!”

밥바라지를 온 선정샘 등에 업혀 물꼬를 만난 아이가 열여섯 살이 되었다.

선정샘이 걸음하지 못해 아쉽다.

어깨수술을 하였다 하니 어여 회복하시길.

식당에서 두 달을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한 품앗이 류옥하다샘도

간밤 10시 마지막 일을 하고 점심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기락샘도 하루 휴가를 내고 손을 보태러 왔다.

창고동 청소가 시작이었다(학교는 이미 며칠 동안 천천히 먼지를 털었더랬다).

2018년 한해 내내 열 일이 없던 공간이었다.

사람이 물러난 자리엔 온갖 벌레들이 들어와 살았다.

놀라고 당황했을 것이다.

사람도 놀랐다. 끊어두었던 수도를 이어놓으니 윽,

여자 쪽 욕실 샤워기와 세면대 물이 샌다.

다시 잠그다.

낮은 온도였긴 하나 히터를 털었는데도 결국...

천장의 전등도 먹통이다. 어디가 문제일까?

하지만 열악한 물꼬의 환경은 언제나 멋진 즉흥의 시간을 부른다.

촛불과 난로에 의지해 토굴수행 같은 느낌을 주는 창고동의 밤이었다.


저녁버스로 사람들이 왔다. 공간에 익은 이들, 모두 아는 얼굴,

하지만 서로는 처음 보는 이도 있는.

물꼬 10년에 비로소 서로 얼굴을 봤다는 이들도 있었더라지.

“무량아!”

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홀로 기차타고 물꼬에 왔다, 열다섯 살이 되었다.

무량이 제 짐보다 호두찐방이며 잡채며 반찬통이 더 컸다.

오랜 논두렁 무량의 엄마 미선샘의 마음을 읽었다.

하하, 물질로 현현하는 마음?

현지샘, 도영샘, 이제 품앗이일꾼이 된 청년들이다.

목장갑까지 준비물을 잘 챙긴, 그야말로 정석 모범생들이었다.

인교샘 역시 자가용 대신 기차를 타고 새끼일꾼 윤호와 건호랑 나타났다.

밥바라지에서부터 때때마다 보탠 살림이 헤아리기 어려운 그이다.

이럴 때 고맙다는 말 또 전하기.

아이들 대표라고 기억되던 윤호가 열여덟이 되다니!

작년 한 해 못 봤을 뿐인데 또 훌쩍 어른에 가까웠다.

건호는... 아니, 저 멋드러진 녀석이 누구란 말인가.

감기몸살로 몸져누운 해찬샘(새끼일꾼은 그렇게 품앗이일꾼이 되었다)이

도저히 못 움직이겠다는 연락을 주었다.

스물의 규모는 열아홉이 되었다.

내일 들어오는 이들도 있다.


검소한 저녁밥상이었다. 휘령샘네 엄마표 마른반찬도 올랐다.

무량의 밥상머리 공연이 가마솥방의 격을 높였다.

두어 시간의 밥 때를 세 시간으로 늘여놓으니 더욱 충분하고 충만했다.

상을 물리고 도란거리는 풍경을 보니, 이미 저게 하나의 일정이구나 여겨졌다.

“자신의 움직임을 계속 쳐다보기, 이번엔 그것을 중심에 둬보지요.”

뭘 안 해도 좋을 테지만.

휘령샘은 창고동에서 쓸 초를 챙겼다.

공간을 아는 이의 뒷배노릇이라.

(지난여름 한 때의 어른의 학교에선 밥바라지를 하고 교무실을 청소했던 그다.

품앗이로서의 손발도 모자라 논두렁으로도 물꼬살림을 챙겨나가고 있다.)

“늘 그대들로 내가 산다!”

물꼬는 다시 그렇게 돌아간다,

균형이 무너진 몸으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던 산골살이였는데.

누군가 자연스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번일정에는 처음 새끼일꾼이 되는 건호가 사진기를 맡았다.

“아직도 그러나? ‘옥샘, 그러면 제가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요.’”

자신이 조립한 레고를 다른 친구가 놀까봐

굳이 해체를 하며 그리 말했던 일곱 살 건호였더랬다.

“나중에야 그 말이 배가 아프다는 뜻인 줄 알았어요!”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도 늠름하고 올차게.


별빛을 길라잡이 하여 달골에 올랐다.

창고동에서 좌선이 있었다.

놀랬다. 쑤욱 들어가는 명상이라! 선방의 참선 수도자들 같았다.

한참을 거미줄 쳐 있었다 하나 오랫동안 명상으로 닦여진 공간이다.

난로에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었다.

차를 함께 달였다.

촛불 아래 난롯가에 모여 군고구마를 까먹었다.

그 맛을 옮길 수 없어 안타깝다.

옮긴들 그 맛을 보일 수 없어 또한 안타깝다.


갈무리모임을 하고 23시 불끄기.

껐다. 세상에나! 물꼬의 주말일정에 그런 날이 오다니.

어렵게들 모인 짧은 일정이 아쉬워

시간을 붙잡느라 자정이 우리 모르게 넘어가던 물꼬의 주말들이었다.

“올해는 잠 좀 자가며 움직이자!”

그래도 젊은 것들은 밤새 어찌나 복작이며 드나들던지.

모를 줄 알았지! 그대들이 그 밤에 한 일을 나는 알고 있나니.


행복했다, 라고 쓰겠다.

이 사람들이 있어 나는 세상 끝에서도 물꼬로 올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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