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난로에 불을 지피고 음악을 채운 창고동에서 사람들을 맞았다.

전통수련으로 몸을 풀고 아침뜨樂을 걸었다; 걷기명상

발아래서 겨울이 사각거렸다.

왼발이 발을 떼기 시작하자 오른발 쪽으로 몸의 중심이 옮아갔다.

처음 걷는 양 우리는 걸음을 보고 느끼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이번 모임의 고갱이다.

미궁을 돌고 밥못까지 올라가 연못가에

오래 그렇게 해왔던 사람들처럼 자연스레 바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깜짝 또 놀랐으니! 아래로 후욱 깊이 들어가는 명상이라.

그동안 갈고 닦은 바 있었던 공간이라 그랬을 테지.

이미 마음먹고 온 이들이라 또한 그랬을 테지.


주말일정 둘째 날이면 꼭 먹던 콩나물국밥 대신 시래기국밥을 먹었다.

학교아저씨가 키우고 데치고 가지런히 말린 것들이다.

상을 물리고 ‘너의 목소리가 보여’.

우리는 그것을 숙제검사라 부른다.

준비해온 글을 읽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

누군가는 짧은 강의를 준비하기도 하는.

그런데,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하고 왔는 양 우리는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삶의 방향과 관계는 평생 사람살이의 큰 주제라.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제까지 새 부임지 업무를 이어받고 젤리와 과자를 한 가마니 들고 온 아리샘,

간밤까지 학교 서류를 끝내고 과일을 안고 온 휘향샘,

변함없이 대구 명물 납작만두를 배달 온 윤지샘이 들어섰다.

물꼬의 2월 모임과 꼭 겹치는 전교조 대의원대회에

올해도 아리샘이 향한다.

“점심 먹고 갈라고!”

내려왔다 되짚어 올라가는 길이 어디 들리는 길인가,

점심 먹을 곳이 어디 없겠는지,

부러 돌아가는 길이라.

그가 전해준 장미꽃 송이를 오래 본다. 환영 받은 기쁨이라.

물꼬의 궁한 살림을 희중샘과 함께 받쳐준 지난해였더라지.

언제라고 아니 그래왔더냐만.


‘소금꽃’; 일명상.

사람들이 호미와 낫을 들고 나설 무렵

윤실샘과 영진샘이 현준이와 윤진이를 달고 왔다.

어른들이 외려 걱정이지

아이들이야 저들 힘찬 생명력으로 잘 사니 그들 안부를 묻지 않는다,

그리 늘 말하지만 그들이 어찌 궁금하지 않을까.

세상으로 나올 때 애를 먹었던 윤진이가

얼마나 야물고 실하게 자랐는지, 목울대가 울컥했다.

달골 아침뜨樂에 올라 아고라의 마른풀을 뽑았다.

그건 봄맞이고 새날을 맞는 의식이었다.

아침정원을 만들기 시작하며 뒤집었던 땅은 차츰 제 살을 붙이고 있었고,

지난해는 무산샘이, 그리고 이 겨울의 끝에는 학교 아저씨가 예취기를 돌렸다.

아고라 계단만큼은 사람 손을 필요로 하지.

하다샘과 도영샘을 비롯 사내아이들은 계단 아래로 모이는 물을 위해 수로를 팠다.

“라디오소리 같아요.”

인교샘과 내가 나누는 이야기를 곁에서 듣던 윤지샘이 그랬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걱정 없는 하늘(하기야 대해리는 사정이 늘 좀 나은 듯)이었고,

서로 때로 홀로 편안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한참 혼자 풀을 뽑던 휘령샘은 무슨 생각에 골똘했던 걸까...

물꼬 수행이 힘이 있는 건 역시 일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저녁엔 학교 마당에 모닥불을 피웠다; 장작놀이

우리는 또 고무마를 구웠다.

가끔 막대기로 불잉걸을 치면 빛싸라기가 하늘로 솟아올랐고,

그 꼬리에 환성과 탄성과 더러는 소원을 달았다.

사내아이들이 깡통을 들고와 쥐불놀이를 하기도 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빛 무더기.

夜단법석의 가마솥방이 이어졌다.

김치부침개는 고솜했고,

인교샘네서 온 버터구이 반건조 오징어는 명품, 명품이었다.

“어디서 이리 맛있는 게 있어?”

별 말 안 하는 영진샘이 입을 다 열었더라는.

하여 물꼬 밤참의 고전 골뱅이소면이 쏙 들어가버렸더라지.


달빛명상.

수우 족이나 나바호 족을 비롯한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알래스카 이뉴잇에겐

자신의 영혼과 만나고 싶은 이들이 산을 방황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 ‘비전 퀘스트’의 종착지는 스웨트 로지(버드나무로 이은 오두막)였고

방랑자는 이곳에서 자신을 정화시켰다.

스웨터로지로 가듯 숲으로 들어간 밤이었다.

침묵의 동그라미가 만들어졌을 때

마침 동쪽 산에서 달이 떠오르며 공간을 채워주었나니.

만트라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2019학년도 앞에 섰다!

이런, 어제의 밤 11시 소등은 결국 이어지지 못했다.

자정에 엄마들만 잠깐 거실에 앉아 서로의 애씀에 어깨 두드려주었다.

우리 엄마들도 응원이 필요해!

물론 이 밤도 젊은 것들은 문턱이 닳게 했다.

그 밤 너들이 한 짓을 누군가는 알아,

눈부신 젊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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