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 같은 사흘이었다, 물꼬스테이.


화들짝 깨어 머리를 감은 이른 아침.

해건지기를 끝내고 아침 밥상.

‘시 읽는 아침’과 ‘일수행’의 속틀을 조금 바꾸다.

마당에 나머지 종이박스들을 태웠다.

물론 쓸 것도, 불쏘시개로도 남겨놓고.

그래도 쌓인 살림이라.

2004년부터 몇 해 지은 포도농사에서 남은 낡은 상자들도

비로소 훨훨 떠나보낸 시간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삶도 새로 자리를 잡을 테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나온 종이 쓰레기들도 덩달아 태우다.


자목련·백목련·줄장미·수수꽃다리 가지도 잘랐다.

밑 쪽 잎은 다 떼 내고, 위로도 잎을 절반 자르거나 떼거나.

스치로폼 박스 아래 구멍을 내고 흙을 채운 뒤 심다.

꺾꽂이다.

뿌리 내려준다면 달골 어느 곳에 옮겨질 테다.

사이집 앞마당에 원추리를 마저 심고 마을로 내려서다.


11시부터 책을 읽고 전체일정 갈무리.

물꼬스테이가 달마다 셋째주말 공식일정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첫 움직임이었다.

“아무 문제 없네요.”

그렇다. 우리 잘 살고 있다. 다만 머리가 복잡했던 것.

우리가 보낸 사흘은 그걸 몸으로 경험한 날들이었다.

어디 가서 살아도 무슨 일을 해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고들 했다.

함께 애쓴 모두 고맙다.

이번에는 예외 없이 일정에 따랐지만

다음에는 일정을 따르는 것과 자유로운 쪽을 각자 선택하는 건 어떨까.

그리 또 해보기로 한다.

그러다 자리를 잡아갈 테지.


사람들 보낸 자리로 식구들 하룻밤 들어오다.

오후에는 아침뜨樂에 들어 미궁 잔디와 잔디 사이 다니는 길에 있는 풀을 뽑았네.

뿌리 질기니 애쓴 만큼 금세 표가 잘 안 나더라.

그래도 무서운 게 또 사람 손이라 적게라도 훤해진 한 곳.

그런 손들이 없으면 이 너른 살림이 어떻게 건사되겠는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02 2023.12.26.불날. 맑음 옥영경 2024-01-07 267
6601 2024. 4. 6.흙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267
6600 2022.12.15.나무날. 눈 옥영경 2023-01-06 268
6599 2023. 1.24.불날. 싸락눈 내린 새벽 옥영경 2023-02-27 268
6598 2024. 1. 2.불날. 흐림 옥영경 2024-01-08 268
6597 2024. 1.2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2-07 268
6596 2024. 4. 8.달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268
6595 2024. 1.17.물날. 비 옥영경 2024-01-29 269
6594 2024. 1.18.나무날. 비 옥영경 2024-01-29 269
6593 2024. 4. 1.달날. 맑음 옥영경 2024-04-21 269
6592 2022.11.11.쇠날. 맑음 옥영경 2022-12-16 270
6591 2022.12. 4.해날. 뿌연 하늘 옥영경 2022-12-28 270
6590 2022.12.10.흙날. 흐림 옥영경 2023-01-06 270
6589 2023. 1.25.물날. 맑음 옥영경 2023-02-27 270
6588 2024. 1.24.물날. 맑음 / 탁류, 그리고 옥구농민항쟁 옥영경 2024-02-07 270
6587 2022.12.11.해날. 맑음 옥영경 2023-01-06 271
6586 2023. 5.12.쇠날. 흐림 옥영경 2023-06-13 271
6585 2023.12.20.물날. 눈 옥영경 2023-12-31 271
6584 2024. 4. 2.불날. 흐리다 밤 비 / 옳다면, 가시라! 옥영경 2024-04-21 271
6583 2020. 6.17.물날. 살짝 흐린 옥영경 2020-08-13 27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