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31.해날. 흐림

조회 수 605 추천 수 0 2019.05.02 16:16:30


며칠 전 한 문예지로부터 원고 청탁이 온 메일을 오늘 열다.

20년 만에 책을 내고,

올해부터는 글로 밥을 버는 일에도 애를 써야겠다 생각하는 때

작은 청탁 하나도 반갑기 더한. 고마울 일이다.


엊그제 신촌에서 기타 치는 양반들이 모였는데,

그 틈에서 그 공간에 기증한 책 두 권이 보였기 훑어보고 있었는데,

중세근세로 이어진 서울골목에 서린 역사와

개항도시를 찾아 근대와 개항의 현장을 걷는 책들이었는데,

관청 몇 곳과 해결해야 하는 사안들이 줄을 서 있어서였는지

고단함이 밀려 마치 길이 없다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었는지,

책에서 인용한 시 한 편이 위로를 던졌더라네.

그대와도 나누나니.



(...)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


그토록 강렬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의 표제시 가운데서)



그러니 나여, 그대여, 사라지지 말아라.

희미한 불빛이라도 스러지지 않고 있으니

나, 그리고 그대,

아직 살아있고 살아갈 수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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