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종일 안개에 잠겨 있었다.

그래도 어디선가 풀을 깎는 기계 소리가 들렸다.

안개비가 내리는 마을에 내려섰다.

비는 는개비로 시작해 가랑비가 되었다.

밤이 돼서야 마을이 드러났다.


고흥에서 귀한 책이 둘 왔다, 시와 함께.

책을 만든 종이 자투리로 만든 엽서도 잔뜩.

날마다 삶을 기록하는 이 누구인가,

이렇게 날마다 시를 쓰는 이 누구인가,

그 시를 나누는 이 누구시던가.

이야기를 날마다 글종이로 500자락 남짓 쓴 지 스무 해가 넘어 되는 이.

어찌 이리 정갈하고, 부지런하고, 단단하면서 부드러우신가.

<시골에서 도서관하는 즐거움>(최종규, 2018);

책사랑과 삶사랑을 기록한 열두 해 도서관 일기.

<우리말 글쓰기 사전>(최종규, 2019);

'어떤 이야기가 삶에서 피어나 글쓰기로 거듭나는가 하는 삶을 담으려' 한 책.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면, 남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스스로 한 걸음씩 내딛는 신나는 놀이살림이지 싶'다는.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넣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오래 그럴 것 같다.

이렇게 탄탄하게 삶을 가꾸는 사람을, 단단하게 써가는 글을,

나는 도저히 쉬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부끄러웠고, 이 역시 오래 그럴 것 같다.


저 멧골에서 이 멧골로 날아온, 책과 함께 전해온 시를 읽는다.

받을 그의 이름을 달고 시를 써본 지 언제이던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 떨리는 손으로 한 자 한 자 옮긴다.


물꼬 옥영경 님한테


하늘


하나를 하는 하늘님

둘을 두는 두레

셋이 서는 셈

너덧이면 넉넉한 넷째


하느작질 하는 하늘이

두리번질 두근두근 두리

서성임질 세우고 서리콩

네모질 넷이서 너끈히


하던 대로 한 한벗

두던 대로 둔 두밤

서던 대로 선 섬돌

널던 대로 넌 너머


한 가지를 해본다

두 길을 도리도리하네

세 갈래를 섞지

네 굽이를 너풀너풀


(2019. 8.26.○○○)


당신이 내게 하늘을 주었을 때 혹은 당신이 내게 하늘이라고 했을 때

이곳이 하늘이었고 그대가 하늘이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14 새 노트북컴퓨터가 생기다 옥영경 2003-12-10 2668
6613 2020. 4.13.달날. 맑음 옥영경 2020-06-15 2631
6612 대동개발 주식회사 옥영경 2004-01-01 2626
6611 165 계자 닷샛날, 2020. 1.16.나무날. 맑음 / ‘저 너머 누가 살길래’-마고산 옥영경 2020-01-28 2599
6610 푸른누리 다녀오다 옥영경 2004-01-29 2595
6609 7월 8일, 요구르트 아줌마 옥영경 2004-07-19 2594
6608 똥 푸던 날, 5월 6일 옥영경 2004-05-12 2591
6607 서울과 대구 출장기(3월 5-8일) 옥영경 2004-03-10 2591
6606 경복궁 대목수 조준형샘과 그 식구들 옥영경 2003-12-26 2585
6605 성현미샘 옥영경 2004-01-11 2568
6604 김기선샘과 이의선샘 옥영경 2003-12-10 2550
6603 물꼬 사람들이 사는 집 옥영경 2003-12-20 2530
6602 6월 6일, 미국에서 온 열 세 살 조성학 옥영경 2004-06-07 2527
6601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38 계자 옥영경 2004-01-06 2519
6600 장미상가 정수기 옥영경 2004-01-06 2510
6599 122 계자 이튿날, 2007.12.31.달날. 또 눈 옥영경 2008-01-03 2480
6598 새금강비료공사, 5월 11일 불날 옥영경 2004-05-12 2465
6597 새해맞이 산행기-정월 초하루, 초이틀 옥영경 2004-01-03 2428
6596 장상욱님, 3월 12일 옥영경 2004-03-14 2423
6595 [바르셀로나 통신 3] 2018. 3. 2.쇠날. 흐림 / 사랑한, 사랑하는 그대에게 옥영경 2018-03-13 241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