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세찬 바람이었다. 밤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간밤 물꼬 누리집이 먹통이었다.
영문을 모르고 도대체 이 일을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당황하며
한밤중 하다샘을 호출하다.
도메인을 관리하는 쪽의 서버가 저녁에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것.
새벽에야 복구되었다.
품앗이 들일을 가다.
올 봄학기에는 마을이고 멀리고 들일에 손보탤 일이 없었을 것인데,
코로나19로 개학이 늦춰지면서 또 그렇게 짬이 났다.
인근 도시의 가정집 두 채 꽃 마당을 일구는 자리였다.
일찍이 돌격대라고 이름을 붙이기까지 하며 여러 차례 모여 일을 했던 손들이다.
흙을 패고 돌을 골라내고 벽돌 길을 놓고, 꽃밭에 벽돌 울타리도 만들고,
한켠에선 울타리 나무와 마당에 몇 가지 묘목도 심고,
그리고 나머지 마당에는 잔디를 심고 사이사이 흙을 덮었다.
종일 마치 돌풍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자주 바람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려야 했고,
더 자주 날려드는 흙을 피해 눈을 감아야 했다.
가끔 ‘빨강머리 앤’이라 나를 부르는 이들이 있는데,
아마도 두 갈래로 땋은 머리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그 바람 속에서 정말 앤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아가는 이 길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 책 어딘가에서 읽었던 구절이었다,
사내애를 기다리던 초록지붕 집에서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던 길목에서였던가.
‘즐기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항상 즐길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마음을 아주 굳세게 먹어야 하지만...’
즐거운 일터였다, 굳게 마음 먹어야만 할 것까지도 아니었던.
품앗이 샘 하나의 안부 전화가 들어왔다.
열 살이었던 아이는 자라 나이 서른이 넘어가고 있다.
어느새 말도 툭툭 놓으며 집안사람처럼 쌓아가는 정이라.
“이번 학기는 풀 가동이다. 한 초등학교 분교 특수학급 담임 노릇 해야 해.
주중엔 분교에, 주말엔 물꼬 주말학교 일정 그대로 돌리고.”
“그거 왜 해? 해야 해? 돈을 많이 줘?”
“아니.”
“그런데 왜 해?”
“내가 가서 만나야 할 애들이 있다잖여.”
그렇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물꼬의 일들이 그러하듯 돈은 돈의 길이 있고 행위는 행위의 길이 있다.
많든 적든 임금은 임금의 길대로, 가르치는 건 오직 가르치는 길대로 흘러갈 것.
내일도 새벽부터 품앗이 들일을 나서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