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20.쇠날. 맑음

조회 수 556 추천 수 0 2020.04.17 07:57:21



기온이 쑥 내려갔다. 바람도 많았다.

품앗이 들일을 이틀째 나갔다.

마을 일은 아니고 좀 멀리.

계곡을 낀 한 자락에 있는 카페를 포함해 계절 숙박을 하는 곳으로

앞마당이며 뒷마당이며 몇 곳에 꽃과 나무를 심는 일이었다.

땅을 패고 마른풀과 풀뿌리와 돌을 골라내고

모양을 내서 철쭉을 심어나갔다.

비탈은 퍽 힘이 들었다, 괭이질은 둘째 치고 서 있는 것부터.

 

둘씩 짝을 지어 세 패가 작업을 해나갔다.

팀장이 설명을 하고 자리를 뜨면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팀장의 말을 해석하는 것에 차이들이 있고,

다시 팀장의 말을 확인하기 전

종국에는 목소리 큰 사람 중심으로 일을 하게 되는데

팀장의 지시랑 달라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잦았다.

자기의 생각을 친절하게 잘 전달할 필요가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좇아 하는 해석이

말한 그인지 들은 나인지를 잘 판단해야 했다.

일하는 사람 역시 전체 일의 앞뒤를 헤아려야

실수를 덜 수 있었다.

같이 일하라면 호흡 또한 중요했다.

너무 손이 빨라도 안 되고, 늦어도 또한 아니 되는.

상대를 끊임없이 살펴야 결국 힘이 덜 들게 되는.


일하는 이 가운데 우리말이 아주 서툰 중국인이 있었다.

중간 관리자가 그를 어찌나 함부로 대하든지.

악의 없는 그의 성품을 알고 막노동판에서 으레 보이는 현상임을 감안해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말 못하는 그라고, 힘없는 그라고.

말은 말에만 갇혀있는 게 아니다.

소통은 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중국인 그도 한 아이의 아비이고, 나이 마흔을 넘은 가장이고,

멀쩡히 삶을 살아가는 온전한 성인이었다, 다만 이국에 와 있는.

그야말로 만만한 놈 구박이었다.

상황을 말하는 중간 관리자의 말은 또 어찌나 길고 긴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그는 타인을 탓했다.

, 거기 내 모습이 없다고 어찌 장담할까.

강자에게 굽히고 약한 자를 업수이 여기는,

만만한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의 잔인한 면을 날 것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미치는 전체 분위기였다.

좋은 마음으로 손을 보태러 가서 좀 의기소침해졌다.

일하면서도 노래가 절로 나오고

그래서 끊임없이 창을 해대며 신명을 내는 다른 날과 달리,

농도 하고 목소리를 한껏 높여 타인들을 격려하는 여느 날과 달리,

중간 관리자에 덩달아 슬금슬금 올라오는 내 짜증을 보아야 했다.

일로 치자면 가장 꼬래비로 선 사람이라

분위기를 반전 시키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럴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었던.

나의 움직임이 그에게 힘이기를,

내가 하는 일이 그가 일을 하고 싶도록 하는 응원이기를.

같이 일하면 그런 마음인 걸

오늘은... 그 일터에서 떠나고 싶었다, 일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그가 아니라 내게도 숨어있을 인간으로서의 실망스런 모습에서.

그래서 또 사람일지라. 사람, 참 별것 아니지...

그러나 또한 위대한 사람의 마음이 있는 줄 아노니.

 

그래도... 하루를 채우는 시간에는 소소한 재미들이 또 있지.
자갈 길 위에 판석을 깔고 틈새 흙을 채우고,

마지막에 걸어 나오며 판석의 흙을 씻어내며 마음 개운했다.

오후로 넘어가며 볕이 실해져 흩어지는 물줄기를 싱그럽게 느끼게 했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수입해온 그 판석 더미에서

, 글쎄 카멜레온이 나왔네!

초록색이었던 그는 얼른 달아나 나무줄기에 붙었는데,

어느새 나무 껍질과 구별이 어려운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먼 길을 떠나온 그의 처지를 생각해본다.

개체수가 하나라도 이곳에 미칠 생태변화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더 이어나가기에 너무 지친 흙일이었다.

당장에 내게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고 이렇게 포기하는 생각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고된 일이 그것만으로 끝이라면 그야말로 힘이 다 소진될.

일이 가져올 내일에 대한 설렘으로 또 일정정도 가뿐해지는.

바위 사이 철쭉은 이리 고개를 내밀겠구나,

심은 이 모양들은 이런 형태로 꽃을 피우겠구나, ...

나무를 심고 꽃을 심는 일은 그래서도 또 재미가 없을 수 없는.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줄장미 네 그루를 얻어오다.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락'의 '꽃그늘 길'에 심으리.

구덩이가 제법 커야 할 게다.

학교아저씨는 감자씨를 잘라놓았다.

밭도 패두었으니 내일이나 심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14 7월 8일, 요구르트 아줌마 옥영경 2004-07-19 2566
6613 165 계자 닷샛날, 2020. 1.16.나무날. 맑음 / ‘저 너머 누가 살길래’-마고산 옥영경 2020-01-28 2559
6612 대동개발 주식회사 옥영경 2004-01-01 2557
6611 푸른누리 다녀오다 옥영경 2004-01-29 2555
6610 똥 푸던 날, 5월 6일 옥영경 2004-05-12 2554
6609 서울과 대구 출장기(3월 5-8일) 옥영경 2004-03-10 2550
6608 성현미샘 옥영경 2004-01-11 2528
6607 경복궁 대목수 조준형샘과 그 식구들 옥영경 2003-12-26 2504
6606 6월 6일, 미국에서 온 열 세 살 조성학 옥영경 2004-06-07 2493
6605 장미상가 정수기 옥영경 2004-01-06 2478
6604 김기선샘과 이의선샘 옥영경 2003-12-10 2478
6603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38 계자 옥영경 2004-01-06 2473
6602 물꼬 사람들이 사는 집 옥영경 2003-12-20 2459
6601 122 계자 이튿날, 2007.12.31.달날. 또 눈 옥영경 2008-01-03 2441
6600 새금강비료공사, 5월 11일 불날 옥영경 2004-05-12 2429
6599 장상욱님, 3월 12일 옥영경 2004-03-14 2386
6598 [바르셀로나 통신 3] 2018. 3. 2.쇠날. 흐림 / 사랑한, 사랑하는 그대에게 옥영경 2018-03-13 2364
6597 눈비산마을 가다 옥영경 2004-01-29 2349
6596 주간동아와 KBS 현장르포 제 3지대 옥영경 2004-04-13 2330
6595 새해맞이 산행기-정월 초하루, 초이틀 옥영경 2004-01-03 232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