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에 잠겼던 멧골이 깨고 있었다.

아침 7시 제습이를 데리고 아침뜨락을 걸었다.

둘래둘래 가습이를 찾던 제습은

도라지밭 끝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목을 길게 뺐다.

그때 학교 쪽에서 들리는 가습이(인 것 같은)의 목소리.

그에 화답하는 제습이.

제습아!”

부르자 다시 주인을 따라오는 제습이었다.

여느 날처럼 벽돌길을 따라 걸어 그 끝 미궁에 이르렀는데,

, 앞서간 제습이가 없다!

남쪽의 도랑 너머 언덕에도, 밥못 너머 골짝 산에도 없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가습이 없는 상심인가, 가습이를 찾아보기라도 하는 것인가...

몇 차례 불렀다.

잠시 마음 덜컥할 때 버드나무숲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내려오는 제습.

혼자 그 위쪽으로 좇아간 거다.

가습이도 없는데 혼자서.

가습이는 사람을 바짝 붙어서 그 흐름 따라 다니고,

제습이는 원체 독립적으로 다니긴 하였지만

달골 경계선을 너머 아주 멀리까지 간 적은 없었다.

그의 세계가 확장 되고 있다.

 

아침 8시 학교 마당에 들어섰다.

오후에 비 온다지.

아침부터 무거운 하늘이어 조금 서둘러

교문 현판에 사다리를 걸쳤다.

칠이 마를 시간도 확보해야 하니까.

어제에 이어 현판 글씨의 배경 칠하기.

두 글자를 마저 칠했고,

두어 방울 빗방울 느껴져 내리 오려나 싶어 말았다가 다시 사다리에 오르다.

첫 글자로 돌아가 여섯 글자를 다 재벌칠.

현판 이쪽에서 너머로 거꾸로 몸을 숙여.

불안해서 학교아저씨가 사다리를 잡아주다.

비는 저녁에야 내렸다. 고마웠다.

 

학교에 들어서니 어찌나 반기는 가습이던지.

밥 주고 목 묶어 운동장 걷고, 아직 낯설어 천지로 뛸까 봐.

교문 위에서 페인트를 칠하는 사이에도

어찌나 사람을 불러대던지.

마당을 오가는데도 부르고, 본관 현관을 나와도 부르고.

어제 달골에서 내려와 학교에서 첫 밤을 보낸 그다.

겨울계자에도 내려와 여러 날을 보냈지만

그땐 제습이와 함께였고,

학교에 사람도 넘치던 때였다.

 

교문 안쪽 담 안 구석, 모서리의 그곳은 거의 죽은 땅이었다.

볕이 잘 들지 않는 데다

여기저기서 걷어내 왔던 흙이 쌓여

자꾸 쓰레기더미처럼 보였던 곳.

버려진 땅으로 보이던 그곳을 살리기로.

걷어내 패인 곳들로 흙을 옮기다.

담을 따라 바위취를 옮겨주려.

앞쪽 가장자리로는

언젠가 돌탑을 쌓노라고 강에서 가져와 널부러져 있던 돌을 거기 쓰기로.

 

아침뜨락 측백나무 133그루는 계속 분양(이라고 쓰고 후원이라 읽는) .

오래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들도 어쩌다 물꼬 누리집 들어왔다 소식 듣고

측백에 이름들을 올렸다.

오늘은 지은샘과 재호 재창이 소식을 들었네.

다들 대학생이 되었고나.

형은 물리학과 4학년, 동생은, 뜻밖에도, 연기과였다.

아이들이 어디로 나아갈지 우리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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