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먼 길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필요할 땐 금세 달려올 만도 한 길인 걸,
그래도 주중에 한참을 여러 날 비운다고
학교며 달골에서 걸음을 재다.
지난 한 달, 제도학교의 한 분교 출근을 재택근무로 해왔던.
실 업무는 기존 샘들이 도와주고 있었던.
더는 미룰 수 없는.
내일부터 등교출근이라.
밑반찬을 해서 대처 식구들을 보내고,
사이집에 새로 심은 잔디뿐 아니라 먼저 심었던 것들까지 흠뻑 물을 주고,
울타리 편백들 역시 그리하고는
제습이부터 달골에서 내렸네.
그래도 가습이를 내렸던 경험이 있어 좀 나았다.
가습이가 그랬듯 제습이 또한 달골 대문 너머로 나는 못가네 하고 버텼다.
‘도대체 날 어디로 데려 가냐고?’
사이집 앞의 저들 연립주택에서 줄을 풀자마자
벌써부터 분위기가 이상타 두리번거리는 걸 달래가며 대문까지 갔더랬는데.
학교아저씨를 차 뒷좌석에 먼저 타라 하고
제습을 번쩍 들어 학교아저씨의 무릎에 엥겼다.
겁에 질린 눈으로 그 무릎에 철퍼덕 엎드린 제습이.
학교 마당으로 들어서서 차문을 여니
멀리서 가습이가 먼저 아는 체하며 짖었고,
저 또한 지난 겨울계자를 보낸 것이라 이내 나 아는 곳에 왔구나 안도한 제습이의 눈.
먼저 내려와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차지하고 있던 가습이,
그를 작은 집으로 옮겨주고
큰 집을 형 제습한테 양보케 하다.
둘의 인사는 그예 한 판 몸으로 엉겨 붙는 거였다.
지칠 때까지 서로를 물고 문.
형의 면모를 잃지 않은 제습이, 하지만 가습이도 만만찮지.
한 번씩 그래가며 둘은 관계를 정리할 게다.
어쩌면 야성을 발산하는 푸닥거리일 수도.
그래야 묶여 살 날을 견딜.
제도학교를 지원하는 이번 학기는
한 분교에서 근무를 하는데
숙소는 본교 사택이라.
(잠깐! 여기서 용어를 정리하자면, 움직일 세 공간을 ‘본교/분교/물꼬’로 일컬음.)
사택에서 본교까지 차로 10여 분.
주마다 불날과 나무날은 본교에서 분교와 통합일정.
코로나19의 날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지만
그땐 또 그때대로의 질서가 생기리.
짐을 쌌다.
얼마쯤의 양식과 옷가지 두엇과, 침낭과 책 몇 권.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리 살았던가, 가방을 싸고 푸는.
심지어 물꼬 안에서조차 변변한 방 하나 차지하지 못하고 언제든 옮겨 지낼 준비를 하며 산.
사이집이 만들어지고 그 다락에 드디어 방 하나 잡기 전까지.
소사일지를 넘겨받아 3월까지의 기록을 정리하고,
서서히 건축 관련 글 하나 쓰려는 일의 포문을 열어놓고
(그야말로 시작이 반이라. 선언은 결국 마지막에 이르게 하나니).
모든 일이 한꺼번에 온다는 진리대로
트레킹기를 계약한 출판사에서도 메일이 들어왔는데,
코로나 사태가 장기전이 될 듯하니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책을 내자한다.
그럼 또 그리하면 되지.
다만 제도학교 출근과 맞물려 부산함은 있겠으니
당면하면 당면한 대로.
사실 대체로 많은 일은 그렇게 겹으로 가는 것.
자, 또 다른 새날이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