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14.불날. 맑음

조회 수 427 추천 수 0 2020.06.15 23:13:26


 

석면제거공사를 앞두고 1차로 폐기물처리 중인 분교.

수년의 학교 짐들이 나오고 있었다.

유효기간이 지난 교과서들도 이참에 꺼내고,

학생이 줄어들면서 역시 주인을 잃고 헤매이던 물건들도 나오고,

있는 줄 몰라 쓰여 지지 못했을 것들도 가끔 나오고.

혹 아이들을 풍요롭게 하자던 것이

그만 지나치게 넉넉해서 버려지는 것은 없는가?

우리는 알뜰하게 학교 살림을 살아냈는가?

 

더미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줍기도 했다.

꼭 포장지가 뜯기지 않은 채 나온 것들 아니어도

연필이며 색연필이며 크레파스며 노트며.

부려놓으면 혼자 살림도 한 살림,

한 학교가 긴 세월 쓴 살림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게다 쓸 수 있는 것과 버릴 것을 가리는 데도 적지 않은 품이 드는 일이라

폐기물을 실어내는 트럭 인부들 재촉에 우리들의 마음은 더 바빴는데...

쓰레기봉투로 직행한 것들 가운데도 쓸모가 있는 것이 없잖으나

내게 당장 쓰임이 아닌 바에야 그 모두를 움켜잡을 것도 아니라.

내 손이 닿는 것에서 온전하게 잘 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쓰고 아껴 쓰기.

버릴 줄도 알아야지,
하지만 무어나 귀한 물꼬 살림을 살다 나오니
혼자 애가 탔었네.

버리는 것도 일일 것을,

저것들이 환경에 또 얼마나 유해할 것인가 싶어.

언제나 다 구하지 못하는 세상이라.

그러다가도 제 눈에 드는 것이 있지,

누구에게는 버릴 것이 자신에게는 귀한 그런 것.

아이들이 이미 그린 유화용 캔버스 1호짜리들이 보여 한쪽으로 쟁여두었다.

덧칠해서 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학용품 몇 가지도 바구니에 챙기다.

땀을 빼고 먼지투성이로들 분교 식구들이 다 같이 낮밥을 먹었다.

같이 한 노동 위에 오는 연대감이라.

 

선관위에서 특수학급에 투표함을 설치해서 선거체제를 구성하는 것을 뒤로 하고

3시엔 6학년 특수아동 집을 방문했다.

통합학급 담임과 함께 온라인 학습기기 전달.

3회 방문수업을 하기로 한다; ,,쇠날 14:00~16:00.

하루 두 시간, 내리 하는 수업이면 30분 단축으로 4차시가 가능한.

학교를 나와서 가정에서 하는 수업이라

물꼬에서 하던 방식들을 잘 옮겨올 수도 있을.

설렌다.

학교로 오는 것도 아니고 가셔야 하는데, 하루만 가셔도 되는데...”

다른 샘의 조언도 있었지만

아직 수업이며 업무가 과다한 것도 아니니 할 만할 때 하기.

아이가 못 오면 교사가 가야지!

코로나19 상황 아래 놓인 만큼 전후 절차도 잘 챙겨야 할 테지,

가기 전 교과서 소독, 가서 발열 체크, 수업 중 마스크 착용, 돌아와 다시 교재 소독.

 

분교에서 폐기처분 되나 아직 사용은 가능한 두어 가지 큰 물건이 있었다.

물꼬는 제도학교의 그런 물건들 여럿을 수년 써왔더랬다.

예전에도 여러 번 몇 학교에서 학년이 바뀌면서 나온 학용품들이 물꼬로 보내지고는 했더랬다.

나온 물건 들 가운데 한때 유행처럼 쓰이다 이제는 사용법조차 잊힌 교구들도 몇 보였다.

수업 방식이 퍽 고전적이라 할 물꼬에서 잘 쓰일 수 있는 것들.

이것도 거의 새 건데...”

곁에서 다른 샘들이 챙기십사 권하는 것들도 있었으나

아무리 말짱하다한들 내 쓸 게 아닌 건 결국 물꼬에서도 짐이라.

마침 하얀샘이 트럭을 쓸 수 있다 하여 저녁답에 물꼬로 보내었더라.

혹 나는 오늘 쓸모보다 물욕으로 챙긴 물건은 없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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