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31.해날. 흐림

조회 수 632 추천 수 0 2019.05.02 16:16:30


며칠 전 한 문예지로부터 원고 청탁이 온 메일을 오늘 열다.

20년 만에 책을 내고,

올해부터는 글로 밥을 버는 일에도 애를 써야겠다 생각하는 때

작은 청탁 하나도 반갑기 더한. 고마울 일이다.


엊그제 신촌에서 기타 치는 양반들이 모였는데,

그 틈에서 그 공간에 기증한 책 두 권이 보였기 훑어보고 있었는데,

중세근세로 이어진 서울골목에 서린 역사와

개항도시를 찾아 근대와 개항의 현장을 걷는 책들이었는데,

관청 몇 곳과 해결해야 하는 사안들이 줄을 서 있어서였는지

고단함이 밀려 마치 길이 없다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었는지,

책에서 인용한 시 한 편이 위로를 던졌더라네.

그대와도 나누나니.



(...)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


그토록 강렬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의 표제시 가운데서)



그러니 나여, 그대여, 사라지지 말아라.

희미한 불빛이라도 스러지지 않고 있으니

나, 그리고 그대,

아직 살아있고 살아갈 수 있을지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062 2019.11.19.불날. 잠깐 눈발 날린 오후 옥영경 2020-01-09 555
5061 2023. 5.13.흙날. 빗방울 몇 지난 다저녁때 옥영경 2023-06-13 555
5060 2019 여름 산마을 책방➂ (2019.8.31~9.1) 갈무리글 옥영경 2019-10-12 556
5059 2월 어른계자, 2023. 2.24~26.쇠~해날. 맑음 / 산오름(도마령-각호산-민주지산-황룡사) 옥영경 2023-03-20 557
5058 2019. 8. 2.쇠날. 맑음 옥영경 2019-08-22 558
5057 2019.10.14.달날. 흐림 옥영경 2019-11-27 558
5056 171계자 닫는 날, 2023. 1.13.쇠날. 비 옥영경 2023-01-17 559
5055 2019.10.11.쇠날. 맑음 옥영경 2019-11-27 559
5054 2019.11. 2.흙날. 맑음 옥영경 2019-12-18 559
5053 2월 어른의 학교 닫는 날, 2021. 2.28.해날. 흐리다 빗방울 살짝 지나는 오후 옥영경 2021-03-16 559
5052 2021 여름, 168계자(8.8~13) 갈무리글 옥영경 2021-08-17 559
5051 2019. 6. 6.나무날. 저녁, 비가 시작는다 옥영경 2019-08-04 561
5050 2019. 5.27.달날. 자정부터 시작던 비가 종일 / 비 오는 날에는, 그리고 그대에게 옥영경 2019-07-24 562
5049 2019. 6. 2.해날. 맑음 옥영경 2019-08-02 562
5048 2019. 6. 8.흙날. 구름 조금 / 보은 취회 옥영경 2019-08-04 562
5047 2019. 7.19.쇠날. 밤, 태풍 지나는 옥영경 2019-08-17 562
5046 168계자 나흗날, 2021. 8.11.물날. 맑음 [1] 옥영경 2021-08-17 562
5045 168계자 닫는 날, 2021. 8.13.쇠날. 살짝 흐리다 저녁 비 [1] 옥영경 2021-08-17 563
5044 ‘2022 연어의 날’ 여는 날, 2022.6.25.흙날. 오려다 만 비 옥영경 2022-07-13 563
5043 2023. 4. 5.물날. 비 옥영경 2023-05-03 56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