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문예지로부터 원고 청탁이 온 메일을 오늘 열다.
20년 만에 책을 내고,
올해부터는 글로 밥을 버는 일에도 애를 써야겠다 생각하는 때
작은 청탁 하나도 반갑기 더한. 고마울 일이다.
엊그제 신촌에서 기타 치는 양반들이 모였는데,
그 틈에서 그 공간에 기증한 책 두 권이 보였기 훑어보고 있었는데,
중세근세로 이어진 서울골목에 서린 역사와
개항도시를 찾아 근대와 개항의 현장을 걷는 책들이었는데,
관청 몇 곳과 해결해야 하는 사안들이 줄을 서 있어서였는지
고단함이 밀려 마치 길이 없다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었는지,
책에서 인용한 시 한 편이 위로를 던졌더라네.
그대와도 나누나니.
(...)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
그토록 강렬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의 표제시 가운데서)
그러니 나여, 그대여, 사라지지 말아라.
희미한 불빛이라도 스러지지 않고 있으니
나, 그리고 그대,
아직 살아있고 살아갈 수 있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