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도 밤은 영하로 내려가는 산마을이다.

품앗이샘 하나가 안부를 물어왔다.

‘봄과 함께 피어나서 화사해지셔요’ 했다.

우리들의 봄을 위하여 축배!


인생을 논하러 방문할까 하니 인생에 대한 답을 준비해 놓으시오,

농처럼 그리 인사가 온지 달포, 아직 올 짬은 내지 못하고 연락이 왔다,

아비가 된다는 거,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고단함이 실려서.

학부모에서 시작한 인연이 벗이 되었다.

아이가 국제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해서 작년 8월 학교를 바꿔주었단다.

‘학비가 좀 비싸다지, 그래서 물론 부담이 됐고.

 뭐, 2년까지는 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아이가 아빠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다시 이전 학교로 가겠다네.

 그럼, 그렇게 하라고 했다지.’

문자가 길어졌다.

‘난 말야, 딸에게 항상 해주는 말이 있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자기 외에는 의지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아이 나이 때 내가 저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생각해 보면...

 참, 쉽지가 않아.

 그리고 의심스러운 게... 내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한테 저런 철학적인 가르침을 준 사람이 없고 저런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생각했는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진짜 나에게 저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나 하는 의심겠구나 싶어.’

- 있었을 거야. 다만 들리지 않았을 테지.

  가끔 나도 훌륭한 어른들이 곁에 없었다 싶다가

  내 그릇이 어른들 말을 알아듣지 못했겠구나 싶어.

  제 그릇만큼 보고 듣는 게지.

‘난 딸이 철저하게 자기인생을 살기를 바라거든.

 뭐가 되든 말야, 아빠눈치를 보거나 하지 않는 그런 인생.

 옥샘은 어떤지 몰라도 대부분의 우리 세대가 부모라는 울타리에 너무 갇혀 지냈잖아.

 그걸 깨뜨려주고 싶은데’

- 뭘 그리 큰 걸 바래. 지 생 지가 사는 거여.

  사람이 눈치도 보고 그러는 거지.

  우리가 뭘 준다고 아이들이 받는 게 아니더라.

  우리가 똑바르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야!

  그럴 때 아이들도 아, 생이란 저런 거구나, 살아볼 만하겠네,

  나도 저런 어른으로 커야지, 그러지 않을까!

  아이들보다 우리가 우리 생을 더 생각해야 하는 때라고 봄! 지금 우리 나이 말야.

‘그 눈치라는 게... 뭐랄까... 참 인간의 근원적인 이기심? 뭐냐면 공짜를 바라는 거야, 내가. 

 부모 눈치를 본 건 결국 이기심이고 욕심이더라고, 본능적인 생존욕구 플러스 욕심.

- 사람이란 게 그리 미천한겨. 나나 그대나 누구나.

  사람이 그리 생겨 먹었지만 애써 이타적이고자 하는 게 아름다운 생 아니겄어?


그 결에 학부모이자 벗인 이와 통화도 하다.

그저 그의 안부를 묻고 싶었는데,

"옥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무슨 일 없는데, 그 순간 먹먹해져서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별일 아니라면 이 산마을에서 안부전화 한 번을 하지 않는

인색함에서 굳어진 무소식이었겠는데,

어쩌다 전화가 가서 놀란.

닥쳐있는 관청 관련 일들이며 편치 않아 적이 위축됐을 수도 있겠으나

무에 그리 설움이 복받쳤더랬나.

그제서야 정말 내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싶더라.

아마도 내 결을 알아주는 이여 그랬던가 보다.

4월이 왔다고, 세월호 이후 더는 더 애닯을 일이 없다는 그였다. 세월호는 그런 거였다.

"옥샘, 저도 조금 컸어요."

그래 세월이 간다.

"요새는... 그냥 살아요."

당신도 그리 사는 구나, 나도 그러하다. 

아직도 우리는 세월호를 타고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94 새해맞이 산행기-정월 초하루, 초이틀 옥영경 2004-01-03 2365
6593 주간동아와 KBS 현장르포 제 3지대 옥영경 2004-04-13 2344
6592 노래자랑 참가기 옥영경 2003-12-26 2334
6591 [2018.1.1.해날 ~ 12.31.달날]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18-01-23 2326
6590 계자 열 이틀째 1월 16일 쇠날 옥영경 2004-01-17 2324
6589 3월 15-26일, 공연 후원할 곳들과 만남 옥영경 2004-03-24 2314
6588 KBS 현장르포 제3지대랑 옥영경 2004-03-24 2314
6587 1대 부엌 목지영샘, 3월 12-13일 옥영경 2004-03-14 2312
6586 '서른 즈음에 떠나는 도보여행'가 박상규샘 옥영경 2003-12-26 2301
6585 계자 열쨋날 1월 14일 물날 옥영경 2004-01-16 2297
6584 가마솥방 옥영경 2003-12-20 2297
6583 6월 17일, 쌀과 보리 옥영경 2004-06-20 2283
6582 입학원서 받는 풍경 - 둘 옥영경 2003-12-20 2279
6581 4월 21일 문 열던 날 풍경 - 넷 옥영경 2004-04-28 2274
6580 대해리 마을공동체 동회 옥영경 2003-12-26 2274
6579 4월 10일 흙날, 아이들 이사 끝! 옥영경 2004-04-13 2253
6578 3월 4일 포도농사 시작 옥영경 2004-03-04 2253
6577 3월 2일 예린네 오다 옥영경 2004-03-04 2253
6576 계자 다섯쨋날 1월 9일 옥영경 2004-01-10 2253
6575 물꼬 미용실 옥영경 2003-12-20 225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