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에 하루쯤은 아주 쓰러지다시피 한다.

몇 날 며칠 쉼 없이 어둡도록 움직여가는 탓이다.

이른 아침부터 해지도록 하는 흙일이 만만치 않다.

왼쪽 어깨를 덜 쓰리라 하지만 어느새 쓰고 만다.

땅을 패고 풀들의 질긴 뿌리를 뽑고 돌을 골라내고

그 돌을 수로 바닥이나 적절한 쓰임 자리로 보낸다.

아침뜨 옴자 안 쪽, 땅을 패고 풀을 매 제법 고와진 흙에 오늘은 붓꽃을 옮겨 심었다.


쑥대밭이 된 땅에 조금씩 사람의 영토를 만든다.

풀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거기 사람의 자리를 만드는 일은 지난하다.

그러나 지금은 엄두도 못 낼 거대한 벽을 긁는 작은 금 하나 같을지라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문이 열린다.

내 삶에 그런 용기를 심어준 이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팔십의 한센병 이웃할머니였다.

열손가락의 손끝 두 마디가 안쪽으로 굽어진 손으로

천 평 가까운 산 아래 밭을 홀로 매던 당신은

마치 트렉터가 훑어간 밭이 아닌가 싶을 만치 매끈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 당신의 나이에 이르지도 않았거니와

내 열손가락은 거칠기는 하나 온전하다.

나도 오늘 산기슭 돌밭을 매고 있었다.



그대에게.

남도에 있는 그대의 전화가 닿았다.

오늘은 ‘**샘!’ 하고 부르지 않고, ‘**야!’라고 불렀다.

내게 동료이지만 또한 아들 같은 그대라.

거의 모든 순간을 그대 생각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내내 공부만 한다고 능률이 오는 건 아니더라.

 한참 조용할 이곳이라 다녀가십사 하네.

 그대가 부모님이 아니 계신 것도 아니나

 따순 밥한 끼 멕이고 싶고,

 깊은 기도를 함께하기를 바라나니.”

몇 번의 임용 고배에 내 기도가 모자랐거니 했다.

합격이 꼭 실력에 근원하는 것만은 아니더라.

출중한 실력에,

무엇으로 보나 교사가 되고 남을 그대라.

높은 산 정상에 다 닿았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라,

그런 마음이었다 했느뇨.

그럴 테지, 번번이 마지막 절차에서 꺾이고 말았으니.

지금은 저 남도 끝의 한 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고 했다.

거 봐라, 기간제조차 경험이 없으면 힘들 것을 운이 좋았지 않으냐.

사람의 일이 공 게 없더라.

우리가 생에서 겪은 모든 어려움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오더라,

어떤 식으로든 내게 축적이 되더라.

곁에서 쉬 하는 말이기 쉽다 여겨질 듯도 하지만,

참으로 흔해빠진 위로 아닌가도 싶지만,

그대가 겪은 어려움이 그대의 삶에 또 다른 큰 힘임을 믿는다.

8월 계자에 꼭 합류하겠다지.

6월 연어의 날에 본다면 더욱 기쁠 것이네.

목소리 들어 고마웠다.

아이들 앞에 있으니 정말 이 길에 선 걸 잘했다 싶었다 하니,

그래, 갈 길 몰라 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갈 길 아니 가면 되리.

될 때까지 하려구요, 그 말이 고마웠다.

아암 그래야지, 그대 아니라 누가 교사가 된단 말인가.

더 간절한 기도로 힘을 보태겠다.

사랑한다, 그대여.


아, 저녁에 대학생 하나 상담이 있었더라니.

시험공부하며 자꾸 불안하다는 그에게

역시 그대랑 나눈 이야기를 전하였네.

그럼 그럼, 우리 생에 한 순간인들 버려지는 시간이 어디 있더뇨.

애쓴 끝이 다만 우리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분명 생을 키우는 일임을 믿나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36 4월 물꼬stay 닫는 날, 2019. 4.21.해날. 맑음 옥영경 2019-05-20 17520
6635 2012. 4. 7.흙날. 달빛 환한 옥영경 2012-04-17 8171
6634 민건협 양상현샘 옥영경 2003-11-08 4804
6633 6157부대 옥영경 2004-01-01 4446
6632 가족학교 '바탕'의 김용달샘 옥영경 2003-11-11 4320
6631 완기의 어머니, 유민의 아버지 옥영경 2003-11-06 4272
6630 대해리 바람판 옥영경 2003-11-12 4251
6629 흙그릇 만들러 다니는 하다 신상범 2003-11-07 4237
6628 뚝딱뚝딱 계절학교 마치고 옥영경 2003-11-11 4204
6627 너무 건조하지 않느냐길래 옥영경 2003-11-04 4166
6626 이불빨래와 이현님샘 옥영경 2003-11-08 4145
6625 122 계자 닫는 날, 2008. 1. 4.쇠날.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1-08 4029
6624 출장 나흘 옥영경 2003-11-21 4020
6623 2008. 4.26.흙날. 바람 불고 추웠으나 / 네 돌잔치 옥영경 2008-05-15 3611
6622 6월 14일, 류옥하다 생일잔치 옥영경 2004-06-19 3581
6621 6월 18일, 숲 속에 차린 밥상 옥영경 2004-06-20 3511
6620 123 계자 닫는 날, 2008. 1.11.쇠날.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1-17 3501
6619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2006-05-27 3457
6618 12월 9일, '대륙보일러'에서 후원해온 화목보일러 옥영경 2004-12-10 3394
6617 2007.11.24-5. 흙-해날. 맑음 / 김장 옥영경 2007-12-01 332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