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0~22:30, 물꼬스테이의 흐름이 평소 익은 흐름이 아니어

02:30 깨고 04:30 울리는 자명종에 무거운 눈꺼풀을 올리다.

해건지를 끝내고 06시 학교로 내려가다.


학교 동쪽 개울 계곡에서 다래나무 덩굴을 찾아 헤매다.

아침뜨樂의 꽃그늘길 터널에 뼈대 바닥에 삽목하려는,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그 많던 다래나무도 찾으면 귀하다.

가까이 있는 것은 죽은 듯 보였다.

어떤 건 가지를 따라가 보니 잘린 것이기도 했고.

잎이 나기 전에는 으름이며 다른 덩굴들과 잘 구분을 못한다.

구분이 어렵다는 말이 아니라 내게 어려운.

“이장님, 말씀하신 건 죽은 거 같어...”

“거 있어 봐!”

전 이장님 다시 좇아와 같이 덩굴을 찾아 주셨다.


새로 올라온 가는 가지를 잘라 심는다는 계획이었는데,

큰 줄기를 자르라는 이장님,

“다 살어, 걱정 마.”

따르기로 한다.

“이리 줘 봐.”

이장님 톱 들고 마른 가지들 헤치고 들어가다 그만 손가락 다치시다.

아고, 큰 상처는 아니지만 피 뚝뚝 떨어진다.

“사모님 속상하시겄다, 새벽부터...”

“내가 말 안하께, 걱정 마.”

이장님 건너가시고,

우리는 보이는 조릿대도 몇 주 팠다,

아침뜨樂 들머리 측백 너머로 풀 무성한 작은 언덕 공터에 놓으리라 하고.


연탄 깨는 일이 또 거론되다.

맡은 이가 번번이 제 때 깨지 않고 산을 만들고 만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청계에서 또 계자에서 아이들이 깨거나

샘들이 모였을 적 일 삼기도.

그러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지,

“제 때 깨면 될 텐데, 얼고 단단해져 깨기도 힘들고...”

번번이 얼굴이 붉어졌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싶지만

다른 일에 밀려 쉬 손이 가지 못하고 있거나

설이며 추석이며 연휴에 쌓여있는 걸 다 깨놓거나

어쩌다 좀 짬을 내 깨놓으면

어느새 또 쌓이고 있었다.

계자로 바쁘거나 큰일 있어 얼마쯤 쌓일 수야 있다지만,

일 많은 이곳이라 뭔가 달려 나갈 일 숱하니 그래서 밀리기도 한다지만

어쩌다 그래야지, 이건 아주 일상이다.

“습이예요, 습!”

맡은 이에게 강하게 한 소리를 하고야 만다.

앞으로 얼굴 볼 때마다 일러주기로 했다, 습이 될 때까지.


때건지기에도 노는 손이 없는 물꼬스테이다.

저녁에 차와 쉼의 시간 외엔 계속 몸을 움직이는 일정.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이 우리를 따라오지 못하도록.


08시 시 읽는 아침은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각자 들여다보기도 하고.


09시~12시, 오전 일수행.

꽃밭 꽃들 캐서 아침뜨樂에 붓꽃 심고, 원추리 심고, 조릿대도 심고,

아침뜨樂 들머리 측백 울타리 너머 죽은 호두나무도 베다.

황간 나가 손주 키우다 15년 만에 다시 마을로 삶터를 옮겨온 마을 할머니,

아, '무식한 울어머니'랑 동갑이시더라,

지나다 반가움으로 아침뜨樂 들머리 계단에서 그간의 시간을 나누셨네.

작년에 들어오신, 내가 비운 작년.

낮밥 먹고 다시 달골.

다래나무 심고, 꽃그늘길 풀을 뽑았다,

사이집 앞마당도 조금 팼다, 원추리 옮겨 심으려.


저녁 7시, 책방 앞 평상에서 차와 쉼.

운동장에는 버리는 종이박스들이 타고 있었다.

이런 건 이제 고물상도 가져가지 않는다, 부피만 컸지 돈은 안 된다고.

고운 저녁이 마당에 내리고 있었다.

늦봄 저녁이 초여름 저녁 같아 박꽃 필 것만 같았다.

참 좋은 산마을이고 참 좋은 이 삶이다.

평화가 또한 내려앉는 저녁이었다마다.


20시 달건지기에는 목탁을 악기 삼아 치며 반야심경도 외고, 저녁수행을 하다.

책 읽고 얘기 나누다 22시 하루일정을 끝냈네.

22:00 잠자리 불을 껐다. 이만큼 움직였으면 안 올 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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