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stay를 여는 시간 직전

달골 들머리 계곡으로 갔다.

머리 위로 층층나무와 밤나무 꽃이 한창이다.

키 낮은 고추나무도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고춧잎을 닮은 잎을 이른 봄 따서 무쳐 먹는 고추나뭇잎.

낮에 꽤 큰 열 마리 버들치를 넘겨준 어항이

계곡에 저녁에도 무사히 잘 담겨져 있다.

또 얼마나 많이 잡혔을까,

하지만 비어있다. 오가는 물고기들도 흔적조차 없다.

어, 이 싸한 마음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 초토화된 마을 같은...

내가 한 짓을 돌아보고 있었다. 털썩!

먼저 잡혔던 것들이 죄 큰 것들이었는데,

어린 것들이 찾고 있거나 슬퍼하거나 겁을 먹고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좋자고 그들 평화를 깼다 싶어 미안하고 짠해지는.

그들 온 마을을 밥못으로 옮겨주면 좋겠는데, 공지를 붙일 수도 없고...

존재 모두 사는 일이 멀고 길다.

그래도 나는 버들치를 잡고,

이런 순간마다 권정생 선생의 ‘하느님의 눈물’이 떠오른다.

토끼가 제 목숨 부지를 위해 댕댕이 덩굴 앞에서도 눈물 흘리던.

아무도 잡아먹지 않는 세상에 대한 소망이 담겼던.

“보리수 나무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 마시고 살지.”

“어마나. 나도 그렇게 살아가게 해 주세요.”

“아직은 안 된단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그렇게 될 수 있단다.”

나는 여전히 버들치를 잡을 테지...


저녁 6시 물꼬 스테이가 시작되었다.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목탁을 치다.

우리에게 목탁은 절집 수행을 따라하는, 그저 악기 하나.

서로 안고 온 숙제를 하고, 자신의 책을 읽었다.


‘오늘도 두 번째 건강한 몸으로 마음에 있는(잇는) 모임’,

학교아저씨는 물꼬스테이를 일지에 이리 써놓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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