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님 오셔서 오래 머무시다.

달골에 나무 모셨다고 그리 들리시다.


들일 많은 산마을에서 비 온다면

그간 손이 미치지 못하던 집안일을 하거나 책상 앞에서 해야 할 일들을 잡는다.

졸기도 하겠지. 오전엔 어슬렁거리거나 콩주머니에 묻혀 졸거나.

오후 까물룩거리는 정신을 수습하여

비와 비 사이 달골 창고동과 햇발동 베란다로 간다.

이런 날은 물에 잘 불려진 베란다를 청소하기 좋은 날.

창고동 2층과 햇발동 2층 세 곳, 그리고 햇발동 1층 데크 두 곳.

하지만 한 해를 묵힌 공간들이 만만찮아

창고동과 햇발동 별방 베란다만 청소.

날아든 낙엽송 잎과 참나무 잎을 걷어 포대에 쓸어 담고,

한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다른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세제를 푼 물에 목장갑 손을 담가 난간을 닦고,

바닥은 솔로 고무장갑 손이 문지른다.

걸레로는 창유리와 창틀을 닦아 이참에 묵은 때를 뺀다.


며칠 전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던 한 친구의 글월을 받았다.

오늘은 그에게 답장을 보낸다.

가끔 누리집의 ‘물꼬에선 요새’를 읽는다는 그는

대안학교를 갈 당시에 내가 그를 생각하며 남긴 글을 읽었다 했다.

‘그 때만 해도 대안 교육이라는 것을 모를 나이었고,

알았다 해도 지금처럼 이해할 순 없었을 거에요.

졸업한 지금 와서는 그때 말하셨던 옥샘의 우려들,

그리고 그 여러 한계들이 너무도 명확하달까요.

사실 누가 묻는다면 **에 간 걸 후회한다고 답하진 않을 것 같지만,

행동하지 않으며 가치에만 매몰된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그 곳에서

제가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간들이 아쉬워요.

막상 졸업하고 나와 보니,

일반학교에서도 좋은 친구들은 더욱 많았고 **에서 했던 고민들은

결국 고민을 위한 고민인 것이 많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결국 그 삶으로 이루어진 게 지금의 저이기 때문에,

**를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모르는 거니까 너무 싫어하진 않고

저의 과거로 잘 보듬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대는 어릴 때도 그랬다만 날로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있구나,

글월을 그렇게 시작했다.

‘흔들리는 거? 오래 산 어른들도 그렇단다.

그러니 사람이지. 사람이 그런 거야.

그런 속에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는 것.’

조만간 같이 물꼬stay에서 혹은 물꼬에 그저 머물며 같이 수행키로 한다.

물꼬stay라면,

‘여러 명이 할 때도 있고, 달랑 나 혼자 할 때도 있네.

쓸데없는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계속 움직이며

몸으로 내가 잘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랄까.

어디 가서 뭘 해도 잘 지낼 수 있겠다 자신감이 생긴다고도 하데.

몸으로 건강하게 움직여 그것을 마음으로 전하는 게 목적인 시간이겠다.’


‘그대와 같은 좋은 아이를 알고 있음을 자랑으로 여긴다.

물꼬에 와 주어 고맙고, 기억하고 있어 고맙고,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또한 고맙다.

그렇게 글월을 맺었다.

사랑한다,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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