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대해리까지 이동.

기표샘네에서 잠을 깨는 아침.

“하지 마라, 엄마도 오면 꼭 그런다.”

“엄마들은 그러는 거다.”

아침수행을 끝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잠시 뒹굴고.

넘의 집이 그야말로 내 집처럼 편할 수 있다니,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겠고, 품앗이샘이 주는 편함이었을 테지.

열 살 아이가 서른 살 청년이 되는 동안

물꼬에서 철마다 만나고 때때로 만나고,

달포도 머물고 주말에 잠시도 다녀갔더랬다.

맛난 음식을 대접받고, 여의도를 걷고,

서울역까지 택시를 태워주고 KTX 기차표를 챙겨주고,

이제는 직장 다닌다고 시골 할미 챙기듯하는 그이라.


학교아저씨는 그 사이 마늘밭 감자밭 풀을 매고,

학교 마당은 풀기계로 밀었다.

이 기계는 예취기처럼 풀을 자르는 게 아니라

아주 가루를 낸다.

먼지처럼 날리는 풀가루...

새 거다.

이웃 마을 분이 빌려주셨다.

예닐곱 대 가운데 가장 새 것을 연어의 날까지 여기 두시기로.

여기는 잘 다루는 사람이 없으니 고장이 나지 않는 걸로.

그런데 여기야말로 이게 잘 쓰인다 싶자 기증하겠다셨다.

여유 있다고 하신들 그리 내주기가 쉬운가.

당신은 농사에 늘 쓰시지만 이곳엔 겨우 한 해 몇 차례.

필요할 때 빌려다 쓸게요, 했다.

뭐 하러 그리 빚을 지겠는가.

우리는 가난하나 우리에게 넘치는 것은 받지 않는다,

준다고 다 받는 게 아님!


내가 하는 최고의 사치는 봄가을로 꽃을 들이는 일.

올해는 봄이 다 가도록 못한 일이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에 한 농원을 가다.

준한샘의 소개였다. 그곳 김규홍샘도 물꼬 일을 결국 거들게 되셨네.

동양백합에서부터 실험적으로 나온 수국이며

러시안세이지, 바늘꽃, 한련화, 숫잔대, 꽃수크령, 메리골드, 백일홍, ...

물꼬 마당에 심으라 차에 실릴 만큼 내놓으셨더라.

학교에 얼마쯤, 그리고 달골에 부려진 꽃, 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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