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밭에 들었네.

물꼬가 짓는 농사가 많으네.

봄가을 서너 차례는 이웃 밭들에 들어가 일을 거든다고 하는 말이다.

놉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산마을이라.

더러 이웃끼리 품앗이를 한다고도 하지만

농사일이라는 게 내 집 복숭아를 솎아야 하면 다른 밭도 매한가지라

결국 내 농사에 내 식구만 붙어야 하는.

그래서 먼 도시에서 일꾼을 모아오기도 한다는데

매번 그 비용을 감당할 만큼 규모가 대단한 농사들도 아니라

대처에서 아들딸들이 와서 돕거나 지인들이 나서는.

그 철이 오면 몇 곳의 이웃밭에 드네.

누가 잠깐 물건 하나만 집어줘도 수월한 게 농사일이라,

산골 삶에서 누가 잠깐 들통 하나 들어주어도 큰 도움인 걸 내 모르지 않으니

기한 맞춰 해야 하는 일은 쏟아지고 사람 손 귀할 때

그렇게 이웃의 밭으로 가네.


아침 6시 밭으로 갔다.

어느새 복숭아 알솎기는 시간이 지나고

바삐 봉지를 씌워야 하는 때.

그 일은 또 처음이라.

전문가들은 하루 3,000장을 싼다던가.

그것도 돈내기를 하면 이른 새벽에 시작해 낮 2시면 끝낸단다.

초보라면 못 싸도 1,500장은 쌀 수 있다 했다.

어디 해볼까, 1,900장을 싸고 털고 나오다.

아는 노래란 노래는 다 불려 나왔더라네.

그리라도 아니하면 여름 밭의 하루가 얼마나 길었을 것인가.


저녁 7시 밭에서 돌아와 본관 앞 자갈밭에 털퍼덕 앉았는데,

아, 학교 마당으로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네.

가장자리 둘러친 키 큰 아름드리 나무들이 온몸을 흔들고,

하늘 한 쪽은 아직 환하게 밝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산마을에 깃들어 사는 감동으로.

“고맙다, 고맙다, 삶이여!”

절로 경탄케 하고 눈물짓게 하더라.

날마다 들에서 밭에서 산다, 사람 같이 산다.


한숨 돌리고 달골 오르네.

학교아저씨와 하얀샘이 미궁에 돌을 깔고 있었다.

오늘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을 하다 아침뜨樂을 나오네.

고단하나 이리 마음 좋은 날들, 꿈꾸는 일은 그렇다,

고맙다, 아름다운 삶이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4954 2019. 7.15.달날. 억수비 한 시간 다녀간 옥영경 2019-08-17 534
4953 2019. 7.11~14.나무날~해날. 비 내리거나 흐리거나 맑거나 / 삿포로를 다녀오다 옥영경 2019-08-17 541
4952 2019. 7.10.물날. 비, 여러 날 변죽만 울리더니 옥영경 2019-08-17 504
4951 2019. 7. 9.불날. 조금 흐리게 시작한 아침 옥영경 2019-08-17 492
4950 2019. 7. 8.달날. 맑음 / 올해 두 번째로 나올 책의 원고 교정 중 옥영경 2019-08-17 548
4949 2019. 7. 7.해날. 가끔 구름 덮이는 / 우리 생의 환희이면서 동시에 생인손, 아이들 옥영경 2019-08-17 555
4948 2019. 7. 6.흙날. 가끔 해를 가리는 먹구름 /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스코트 새비지/나무심는사람, 2003) 옥영경 2019-08-16 550
4947 2019. 7. 5.쇠날. 맑음 / 올 여름 첫 미리내 옥영경 2019-08-16 542
4946 2019. 7. 4.나무날. 맑음, 날씨 좀 보라지! / 제도학교의 물꼬 나들이 옥영경 2019-08-14 597
4945 2019. 7. 3.물날. 맑되 잠깐 구름 /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나쓰카리 이쿠코/공명) 옥영경 2019-08-14 590
4944 2019. 7. 2.불날. 맑음 / 날마다의 삶 속에 만나는 기적 옥영경 2019-08-14 568
4943 2019. 7. 1.달날. 아주 잠깐 빗방울 두엇 / 풀매기 원정 옥영경 2019-08-14 613
4942 2019. 6.30.해날. 오후 갬 / 남북미 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옥영경 2019-08-14 482
4941 2019. 6.29.흙날. 비 / 칼국수를 노래함 옥영경 2019-08-14 598
4940 2019. 6.28.쇠날. 저녁 비 / 원석연과 이생진 옥영경 2019-08-14 603
4939 2019. 6.27.나무날. 흐리다 맑음 / 호박잎 꽃다발 옥영경 2019-08-14 629
4938 2019. 6.26.물날. 흐리고 비 / 물꼬 해우소는 더럽다? 옥영경 2019-08-13 599
4937 2019. 6.25.불날. 맑음 / <소년을 위한 재판>(심재광/공명,2019) 옥영경 2019-08-13 656
4936 2019. 6.24.달날. 맑음 옥영경 2019-08-13 538
4935 ’2019 물꼬 연어의 날; Homecoming day’(6.22~23) 갈무리글 옥영경 2019-08-12 1182
XE Login

OpenID Login